23일 개봉될 ‘불후의 명작’의 주연 배우 박중훈과 심광진 감독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려주는 일화 한 토막.
98년초 코미디 연기로 탈진해 1년쯤 쉬기로 작정한 박중훈에게 심광진 감독이 불쑥 찾아와 ‘불후의 명작’시나리오를 내밀었다. “시나리오는 좋지만 1년후 복귀해서 할 첫 영화는 아닌 것같다. 두 번째로 할테니 기다려달라”는 박중훈의 말을 듣고 돌아간 심감독은 지난해 박중훈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끝낸 뒤 다시 찾아왔다. 심감독은 박중훈의 말만 믿고 충무로를 떠나 2년간 멸치 장사를 했다고. “무조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박중훈은 직접 영화사를 찾아가 제작을 제안했고, ‘불후의 명작’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영화는 그 사람이 가진 거 그대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그렇듯이 영화도 맑고 진실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 1년반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박중훈이 ‘사람’을 보고 선택했듯, ‘불후의 명작’도 ‘사람’이 중심에 놓인 영화다. 그는 순수한 꿈을 잃지 않는 에로비디오 감독 역을 맡아 기존의 ‘박중훈표 코미디 영화’에서와는 다른 잔잔한 일상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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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패턴의 변화를 시도한 지금, 그는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 초조하긴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코미디 아니면 액션 누아르 영화만 해서 연기도 ‘웃기거나 혹은 싸우거나’였고 일상의 연기는 해본 적이 없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배우생활 만 15년째. 90년대 ‘흥행보증수표’였던 그는 쏟아지는 출연 제의에 “나를 필요로 하면 달려가주마”하는 생각에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공산품을 찍어내듯 이미지를 소비하는 게 아닐까”싶어 늘 불안했다고 한다. 2년전 의도적인 공백기를 가진 것도 그래서였다고. 그 동안 흥행보증수표라는 호칭은 한석규에게 가고 코미디 연기의 달인은 송강호가 차지했지만, 박중훈은 그의 코미디와 액션 연기의 총화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돌아왔고 ‘불후의 명작’은 그가 선택한 또다른 전환점이다.
“연기가 운명처럼 되어버렸는데 ‘굵고 길게’가면 좋겠지만 그게 안되면 ‘가늘고 길게’라도 가고 싶다. 그럴려면 내가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지…. 요즘 그게 제일 큰 고민이다.”
그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연기법은 “얼마나 생각하고 사느냐”하는 것. “운전면허처럼, 연기는 일단 익히고 나면 그 다음부턴 기술보다 사람이 어떤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빡빡한 일정탓에 점심으로 사온 김밥을 먹으며 인터뷰를 한 그는 “나중에 정 안되면 셀프 카메라로 ‘박중훈의 못다한 코미디’ 비디오를 만들어 팔고 돈 왕창 챙겨 튈까 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가 스타의 위치에 안주하기 보다 연기자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 관객들이 ‘박중훈의 못다한 코미디’를 보게 될 일은 아마 없을 것같다.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