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가 서지 않고 덮칠까 두려워 난 언제나 노심초사한다. 지하철에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릴 때도 난 절대 앞에 서 있지 않는다. 언젠가 영화에서 역으로 들어오는 전철에 정신병자가 다른 사람을 밀어넣어 죽이는 장면을 본 이후부터 난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목숨보전하는 일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바람부는 날이면 간판이 떨어져 내 머리를 내려칠까봐 한시라도 마음을 놓지 않고 두리번거린다.
◇방에 틀어박혀 살아갈까
운전할 때는 나란히 붙어있는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혹시라도 바꿔 밟을까 걱정되어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되어 버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맞은 편에서 달려 오는 차가 중앙분리선을 넘어 내 차로 돌진하지 말라는 법이 없어 난 한순간이라도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 박혀 있기도 한다.
이런 나의 눈에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야말로 너무나 태평스럽게 보인다. 파란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시민이 차에 치어 죽었다는 뉴스가 동네를 떠들썩하게 해도 사람들은 파란 신호등이 켜졌으므로 당연히 차들이 정지할 것이라고 믿고 거침없이 도로를 건넌다.
전철을 기다리는 출퇴근 길의 정거장 풍경을 보면 사람들은 누가 뒤에서 자기를 밀어 죽이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중앙선을 넘어온 차에 의해 대형사고가 나서 수 십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비행기가 떨어져 승객 전원이 몰살당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차와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무조건적 믿음이 생존조건
어째서 이들은 이렇게 태평할 수 있는가? 난 이들이 다만 잠시 동안 두려움을 잊어버린 척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맞서서 미쳐가는 나의 ‘솔직한’ 태도와는 달리, 그들은 설마설마 하면서 두려움을 회피하고 일부러 망각하고 있는 척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틀렸음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망각 때문이 아니라, 바로 믿음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적어도 미치지는 않았다는 그런 믿음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미치광이처럼 엉망진창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믿음이다.
인간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이런 신뢰는 필수불가결하다. 인간의 삶은 이같은 무조건적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가끔 이런 믿음이 배반당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음을 철회할 수 없다.
“세상은 미치지 않았다”는 이 무조건적인 믿음이 바로 우리의 생존조건이자, 종교가 나타날 수 있는 기반이다. 종교는 바로 이런 믿음을 집중화하고 체계화한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