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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와 놀아나다]코리아닷컴, 너 국가대표 맞아? 확실해?

입력 | 2000-12-15 14:24:00


우리에겐 또 다른 나라가 있다? 이건 마치 제 2의 국가 탄생 같다. 인터넷 영토의 새로운 Korea라니. 나라 이름도 장삿거리가 되는 놀라운 시대다.

처음 나온 광고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자애가 정신 없이 춤추는 모습이었다. 쇠창살로 인테리어 한 지하클럽 같은 공간이다. 당신이 자신만을 생각할 때에도 코리아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노라, 코리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런 내용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감쪽같이 속았다. 코리아가 당신을 사랑한다니! 신세대를 겨냥해 '나라사랑'을 일깨우려는 감각적인 공익 광고로 착각한 것이다. 찬찬히 살펴 보니 국가이름을 내건 티저 광고였다.

이런 코리아닷컴의 핵심코드는 환상전략. "나, 국가대표 됐다"는 뿌듯함과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온 국민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코리아란 도메인이 내포하고 있는 대표성은 광고를 보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마치 동경해오던 대상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자신이 직접 그 주체가 됐다는 느낌을 주는 셈이다.

이런 환상전략은 ID 시리즈로 구체화된다. ID '미스 코리아' 편은 웬 못난이가 다짜고짜 자신이 미스 코리아라고 우기면서 시작한다. 어라, 한술 더 떠 그녀의 머리에는 낙서처럼 슥슥 왕관까지 그려진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가 자막에 깔리는 miss@korea.com를 보고서야 기발하네, 무릎을 치게 된다.

뒤이어 ID '짱' 편. 비리비리한 남학생이 샌드백을 두드리며 대한민국 짱이라고 허풍친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지막으로 ID '1004' 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물함 앞에서 옷 갈아입는 대한민국 대표 천사가 아이디만으로 즉석 탄생한다.

도무지 미스 코리아 같지 않은 공주병 증세의 '미스 코리아', 연약한 '짱', 평범한 여학생 '천사'.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코리아닷컴은 일종의 주문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코리아닷컴으로부터 받은 ID를 통해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선망의 이미지를 동시에 부여받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인터넷 코리아에선 자신이 원하는 국가대표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착각 말이다. 그것은 욕망의 업그레이드 작업일 뿐이다.

그러니 만족감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론 불가능한 이미지를 덮어쓰고 대리 만족에 빠져들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울뿐인 이미지기 때문이다. 실제의 자신은 그렇게 금세 달라지지 않는 법.

색다른 아이디어 없이 단순히 '국가이름' 전략으로만 밀어붙이는CF를 보고 있자면 기분이 묘해진다. 56억 원을 주고 사들인 도메인 Korea.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존재의 굴레이자 울타리.

문득 우리나라 이름을 이렇게 장삿속으로 막 써먹어도 되는 걸까 의아해지기도 한다. 하나의 인터넷 도메인이 국가 전체 이미지를 좌지우지할 위험이 있지는 않을까.

며칠 전에 본 뉴스가 스친다. 한국이 싫다고 해외로 떠나는 '절망이민'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떠나는 이유야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코리아에 대한 애착을 잃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코리아닷컴. 이름만 대표라고 내세우는 것은 곤란하다. 왕관을 그려주고 천사의 날개를 그려준다고 그들이 실제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은 아닐텐데. 코리아의 이름을 빌려 왔을 뿐 기실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부디, 인터넷 코리아에선 '실망이민'이 생기지 않도록 내실을 기해주길.

김이진 AJIVA77@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