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협상가다/시어도어 W 킬 지음/강주헌 옮김/254쪽 8500원/아침이슬▼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 끊임없이 협상하고 있다” 는 저자 시어도어 W 킬은 자신의 이름이 양친의 협상의 결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의 이름 두개를 합침).
저자인 킬은 협상의 대가다. 그는 노사관계위원회 법률고문 등으로 1960년대초 부두노동자들의 파업, 1967년의 철도파업, 1988년 ‘뉴욕포스트’ 폐쇄를 둘러싼 굵직한 갈등과 분쟁들에 대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래서 ‘비지니스 위크’는 그를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의 만능해결사”라고 평했다.
저자는 ‘협상은 현상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신뢰와 성실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협상의 타이밍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측면도 빠뜨리지 않는 치밀함을 엿보게 한다. 어쩌면 지극히 원론적인 저자의 주장이 상당한 공감과 설득력을 불러오는 것은 갈등해결의 풍부한 현장경험과 구체적인 실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 후에 미국 사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분쟁과 갈등의 일선에서 그리고 가장 최근의 GM사의 파업, 1998년 프로농구 선수들의 파업, 1995년 프로야구 노조파업 등의 해결과정을 생생하게 진단하고 있다.
일례로 1962년부터 1991년까지 킬은 뉴욕시에서 발생한 상당수의 노사분쟁에 관여해 왔는데, 대표적으로 1962∼63년 사이에 무려 114일 동안이나 ‘신문없는 뉴욕시’의 언론파업에 조정자로 참여해서 수많은 쟁점들을 재정리해 7개항으로 분류하고 협상을 진전시켰다. 자칫 무겁고 답답하게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분쟁의 조정과정도 협상주체들의 유머러스한 언급들을 충분히 동원함으로써 한결 부드럽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참고서적 가치와 대중적 공감을 함께 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이 들고 있는 풍부한 사례나 저자의 경험이 미국이라는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얘기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서 유념해야할 대목이다. 가령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Win―Win 협상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다고 쓰고 있다. 항상 양측이 부족함을 느끼는 선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우리의 협상 현실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그러나 노사갈등이나 시민사회와 정부의 갈등 그리고 이해단체 상호간의 충돌 과정에서 노출된 핵심쟁점들은 충분히 보편성을 얻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협상력의 빈곤을 호소하는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와 시민단체 종사자들이 한번쯤은 읽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책은 갈등의 해결과정을 협상과 조정 그리고 중재로 구분하고 특히 조정과 중재의 차이점을 분명히 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단계에서 새겨둘 만한 십계명을 제시하고 있어 여느 관련 책들과 다르게 보인다.
또한 법에 의한 갈등해결보다는 자유의지적 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ADR)에 역점을 두고, 분쟁관리시스템에 대한 관심의 팽창을 예측하고 촉진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재 경(시사평론가·한국시사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