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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다]실리콘밸리의 괴짜 스티브 한

입력 | 2000-12-17 18:36:00


드라마나 영화에 단골로 나오듯이 세탁소와 슈퍼마켓은 ‘한국계 미국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직장이다.

정보기술(IT)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한(한국명 한승준·40·사진). 그는 세탁업과 인터넷을 접목한 틈새시장 진출로 캘리포니아에서 작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올해 5월 문을 연 드라이베이닷컴(www.drybay.com)은 캘리포니아주 벨몬트에 세탁공장을 두고 퀀텀 휴렛팩커드 루슨트테크놀로지 램버스 등 20여개 유명업체로부터 직원들의 의류세탁사업권을 따냈다. 지난달에는 직원수 4만명이 넘는 오라클과 계약을 성사시켜 다음달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

“맞벌이 직장인들은 세탁소가 문을 여는 9시부터 6시 사이에 이용하기가 어렵죠. 또 고급인력이 세탁소 오가느라 1주일에 한두시간씩 낭비하는 것도 아깝고요.”

드라이베이사는 B2B거래방식으로 기업과 독점계약을 한 후 그 기업의 직원에게 B2C 방식으로 세탁업을 대행한다. 인터넷에서 주문서를 작성하고 회사내 정해진 곳에 빨래를 갖다 놓으면 드라이베이에서 수거해 세탁한 후 다시 그 장소에 놓아 둔다.

“한 회사와 계약을 하면 그 곳 직원의 적어도 10%는 단골로 확보되죠. 현재 회원이 약 3000명이고 월매출액은 6만달러(약 6600만원)가량 됩니다.”

한사장은 내년에 5만명의 회원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본다. 내년 예상 매출은 무려 1800만달러(약 200억원). 미국의 세탁시장규모가 총 300억달러(약 33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터무니 없는 계획이 아니라는 이야기.

“초기투자비로 약 100만달러(약11억원)가 들었어요. 신뢰도를 쌓아야 기업과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초반에 케이블TV광고 전단광고 사은품제공 등 프로모션 비용이 많이 들어갔거든요. 하지만 콘텐츠 사업과 달리 ‘세탁’이라는 오프라인 수요가 기반이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면 즉시 매출이 발생하는 장점이 있죠.”

이달 한사장은 한 미국계 벤처캐피털로부터 500만달러(약 55억원)의 투자약속을 받아냈다. 이 자금으로 내년 중 캘리포니아 지역에 세탁공장을 5개 더 지을 예정. 한사장은 “미국에는 주츠 퍼플타이 등 인터넷세탁업체가 있지만 드라이베이가 실적이나 상표가치면에서 단연 1위”라고 설명한다.

“드라이베이를 이용하는 회사원들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것도 큰 장점이죠. 구매력 있는 층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소비성향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의류부문 인터넷쇼핑몰로 확장할 생각입니다. 세탁물을 통해 선호하는 옷 스타일을 파악하면 1대1 마케팅이 가능하죠.”이번에 시장조사차 한국을 방문한 한사장은 “한국과 일본에도 진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한사장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이민한 1.5세대. 새너제이에서 마케팅을 전공했으며 지난해까지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라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4년 넘게 아이템을 선정하고 시장조사를 했어요. 드라이베이 사이트를 통한 사업 외에도 영세 세탁업자들에게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소프트웨어를 저가로 제공하는 일들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