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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사람들]'힘이 되는 사람'  세민재단 박선영씨

입력 | 2000-12-18 15:53:00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흔들릴 때 그 사람의 말 한마디로 큰 기운을 얻게 되는. 세민재단 박선영간사를 그런 사람이라 느낀 건 낙동강 도보순례길에 나서던 지난달 23일이었다.

총 30일의 일정 중 첫 열흘의 동행취재를 맡아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결혼하고 외박은 처음"이라며 종종걸음으로 차에 오르는 그는 영락없는 신혼의 새색시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전혀 낯가림 없이 쾌활·명랑·발랄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던 그가 호호 웃으며 털어놓은 별명은 '고장난 라디오'. 말이 빠른데다 주제도 휙휙 바뀌니 주파수가 저절로 달라지는 고장난 라디오 같다고 사람들이 붙여줬단다.

그러던 그가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면서 넌지시 건넨 말이 "세린씨는 강단이 있어서 잘할 거예요"였다. 그 땐 그 말이 왜 그리 힘이 됐는지… 그녀의 예언대로 열흘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지리산 살리기 취재현장에서 항상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NGO사람들' 인터뷰 자리에 마주 앉았다. 길었던 머리는 동그랗게 컷트로 잘랐다. 추위를 잘 탄다며 떨고 있는 모양이 좀 피곤한가 보다.

그런데 인터뷰로 들어가 "하는 일을 간략히 소개해달라"고 첫 질문을 던지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취재수첩 세 페이지가 넘어간다.

일일이 받아적기 힘들만큼 빠른 속도로 자신이 맡은 사업들을 국수가락처럼 뽑아내는 그. '고장난 라디오'이기엔 아까운 말솜씨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공식직함은 '세민재단 지구환경보전팀장'. 세민재단은 한국 시민운동의 국제연대 활성화를 목표로 98년 7월 창립된 단체다. 전 경실련 사무총장이며 지리산살리기 국민행동 상임집행위원장인 유재현박사가 이사장으로 있으며 특히 환경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재 박선영 간사가 맡은 일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지리산살리기 국민행동의 사무처 일과 세민재단의 '인터코디 아카데미'. 이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넉 달간 영어수업을 진행한 후 두세 달 동안 해외 시민단체들을 탐방하게 함으로써 전문적인 국제연대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또한 내년 여름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세계시민아카데미'도 준비중이다.

"대학생들이 NGO에 관심은 많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모르는 게 안타까워요. 사람 키우는 게 정말 큰 일인데… 시민단체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세계시민 아카데미를 계기로 많은 대학생들이 NGO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그녀는 연신 "정말 재밌을 것 같다"며 기대가 대단하다.

박 간사가 세민재단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5월. 숙대 국문과 95학번으로 1학년 때 교내 방송반과 연극부를 거쳐 3학년 때 과 학생회장을 했던 그는 4학년 되던 해 그녀가 '친정'이라 표현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연을 맺어 NGO에 눈을 뜨게 된다.

그 후 기독시민아카데미 1기를 수료하면서 그 때 세계시민운동 강의를 맡았던 유재현 박사를 통해 세민재단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그리고 얼마 안되어 99년 'NGO 세계대회'와 올해 'ASEM 민간포럼'이라는 두 거사의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맡아 훌륭히 해냈다.

"가장 큰 국제대회를 두 번 하면서 시민운동의 큰 판을 봤다고 할까요. 우리 NGO들이 외국 NGO들을 만나 서로간에 접점을 이룰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는 거… 저에겐 굉장한 행운이었죠"

그의 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 NGO세계대회 때 그녀와 남편, 두 사람은 국내 80여개 워크샵의 기획을 도맡아 해냈다. 그후 일 년 남짓 연애하고 지난 9월23일 결혼했다.

경실련 대학생위원회 출신으로 시민운동 경력 10여년에 이르는 그녀의 남편은 현재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예산감시시민행동 팀장을 맡고 있다.

남편과 일곱 살 차이인 그의 결혼생활은 "남편이라기보다 동지같다"는 그의 말 속에 잘 녹아있다.

"지난번 'ASEM 민간포럼' 때는 신혼여행 다녀와서 바로 파견되는 바람에 새벽 2~3시에 들어가면 다행이었어요. 아침에 얼굴 잠깐 보고 다시 나가는 일이 수두룩했죠"

문득 전에 들은 말이 떠올라 "그 뒤로 외박은 안했느냐"고 물었더니 "밥먹듯이 했다"며 배를 잡고 웃는다. 그래도 "학교도 같이 다니고 서로 비슷한 일을 하다보니까 그렇게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안들어요"라고 한다.

그녀는 현재 남편과 함께 경희대 NGO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늘 공부를 더해야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NGO라는 부문이 학문적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네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얼른 공부해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개인적으로는 북한문제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북한의 에너지'하면 거의 원자력 얘기잖아요. 하지만 풍력발전 같이 재생에너지 쪽으로 고민해 보려구요. 그래서 내후년에 대학원 졸업하면 외국에 나가서 더 공부할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

"전문성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흔히 NGO들 하면 거리에서 피켓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결국에는 정책문제고 머리싸움이거든요. 누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논거를 내는지가 핵심이예요."

말하자면 '현장경험과 학문적 소양을 겸비한 활동가'.

"완벽하네요"하는 기자의 감탄에 "박사학위를 따든 못따든 진정한 전문성을 갖고 싶어요"하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서 가르칠 수 있다면 더 좋구요."

'선영아 사랑해'를 인용하며 절대 잊혀지지 않는 자신의 이름을 뽐내던 그. 그러나 정작 잊혀지지 않는 건 '고장난 라디오'라며 재잘대지만 조리있게 말도 잘하고, 말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이리저리 바지런하게 움직이며 '손끝 야무지게' 일도 잘하는 그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렇게 밝고 따뜻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더할나위 없는 힘을 주는 활동가로서의 그의 마음씀씀이다.

사람 사이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힘주는 사람' 박선영 간사. 그녀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NGO의 일꾼이다.

오세린/동아닷컴기자 oh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