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린 정부의 말바꾸기 정책으로 선량한 소액투자자만 약 1500억원의 피해를 보게 됐다. 한빛 등 6개 시중은행의 완전감자에 대한 보완조치로 주식매수청구권을 주기로 했지만 행사가격이 시가의 3분의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피해보상은 어림도 없다.
이헌재(李憲宰)전 재정경제부장관은 재직시절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감자는 없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지만 현 경제팀은 이를 비웃기나 하듯 완전감자 결정을 내렸다. 정부 스스로 말을 뒤집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졌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가 약속을 어기다니〓이헌재 전 장관은 3월 중순 “공적자금 투입으로 정부가 대주주가 된 은행의 추가감자는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5월 중순에도 은행간 자율합병시 증자가 필요하면 후순위채 매입방식을 지원하기 때문에 감자는 없다고 했다. 5월말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도 “감자는 없다”고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7월 중순부터 재경부에서 ‘독자생존이 어려운 은행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자구노력에는 감자도 포함된다’는 감자 가능성 시사 발언이 흘러나왔다.
현 경제팀은 8월9일 취임 이후 지방은행부터 감자 가능성을 조금씩 흘렸지만 완전감자 가능성은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12월18일 결론은 100% 완전감자였다. 전임 경제팀의 대국민 약속은 한낱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울어버린 투자자〓대우증권 이승주 연구원은 작년도 서울 제일은행 감자기준을 적용할 때 주식매수청구가격(서울은행 제외)은 △한빛 341원 △평화 166원 △광주 200원 △제주 342원 △경남 213원 등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시가의 3분의1에도 못미치는 수준. 이를 기준으로 볼 때 5개 은행 소액주주의 피해액은 1500억원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이헌재 전 장관의 발언을 믿고 저가은행주를 샀다. 추가공적자금 투입을 위한 증자는 액면가(5000원) 기준으로 이뤄져 주가가 적어도 이 수준까지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현 경제팀이 들어선 이후 금융감독위원회는 감자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공식결정된 바 없다’라는 말로 투자판단을 흐리게 했고 은행주 주가는 정부당국자의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러나 ‘설마 감자하겠느냐’는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주부 이모씨(45)는 “올 8월 재경부장관이 감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 다른 주식을 팔고 적금까지 빼 한빛은행 주식을 5000만원어치나 샀다”며 “정부가 한마디 변명도 없이 약속을 깰 수 있는 것이냐”며 분노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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