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겨울날 서울 시내 어느 유치원. 학예회가 열린 유치원 강당에는 자녀들의 장기를 보려는 학부모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30대 초반의 한 엄마가 옆에 있는 다른 엄마에게 한마디했다.
“우리 딸이 오늘 하는 연극에 주인공으로 나와요. 며칠 전부터 잠도 자지 않고 연습을 했기 때문에 오늘 잘 할 거예요.”
옆에 있던 다른 엄마도 여기에 뒤질세라 “우리 아들은 연극에서는 조연을 맡았지만 태권도 시범에서 제일 앞에 나올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두 엄마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5분 후 연극무대 뒤편으로 가봤다. 연극에서 조연을 맡은 아이가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대사는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본을 보며 팔도 올려보고 목청껏 소리도 질렀다.
아이에게 물었다.
“주인공을 못해서 섭섭하지 않니. 다른 아이들은 대사도 많고 연기도 많이 하잖아. 엄마도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아뇨.”
“왜? ”
“외울 대사가 적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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