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WTO 가입 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했을때 많은 미국의 NGO단체들이 중국의 인권문제 등을 이유로 미국 국회의 비준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중국은 90년대 들어 정치범 문제, 소수 민족 문제 등으로 국제 사회에서 인권단체의 주요한 비판대상으로 여겨졌다. 중국정부도 NGO에 대해서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중국에서 스스로 NGO라는 점을 표방하고 활동하고 있는 애덕기금회(愛德基金會, The Amity Foundation)와의 만남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만남은 국제민주연대의 아시아 인권 여행의 일부로 진행된 중국 방문 프로그램을 애덕기금회에서 도와 준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을 방문한 일행은 7월 29일 상해공항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그냥 숙소와 여행 일정을 소개해 줄 안내자 정도만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애덕기금회의 담당자가 같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샤오 핑핑이라는 매우 단정한 인상의 30대 중반쯤의 여성이었다. 애덕기금회는 다음 도착지인 남경에 도착해서 본부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쩐 일인가 했는데 이번 여행 내내 우리와 동반하기로 했다고 설명해 왔다. 이때부터 형식을 갖춘 인터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 기간 동안 애덕기금회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애덕기금회의 창립▲
당연히 처음에 알고 싶은 것은 애덕기금회의 성립과정이었다. 중국에서 5년 이상 살았던 필자도 중국의 NGO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중국은 여전히 국가와 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사회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덕기금회는 1985년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발기하여 결성되었다고 한다. 단체 소개서에 사업의 목적으로 교육, 위생, 사회복지, 농촌발전 등을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애덕기금회는 비정부기구로서 중국의 여러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을 주요 사업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애덕기금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NGO와는 달리 자선단체의 성격이 강하며, 바로 이 점이 중국에서 NGO로서 활발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애덕기금회의 스태프는 초기의 4명에서 시작해서 35명으로 늘었고, 남경 지역에 한정되었던 활동 영역도 현재는 중국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1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정도로 성장했다.
중국의 대부분의 다른 사회단체들이 사실상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자주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게 보였다.
물론 중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비정부기구로서 얼마나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그리고 정부와의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이에 대한 질문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애덕기금회의 활동 : 서부 농촌 지역을 주요 활동대상으로▲
우리는 상해의 몇 곳을 둘러본 뒤 남경의 애덕기금회의 본부를 방문하여 애덕기금회의 활동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애덕기금회 본부는 남경대학 부근의 아담한 2층 주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주택이 사무실로 개조된 경우가 적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드문 경우이다. 사람을 압도할 덩도의 커다란 규모를 가진 중국의 다른 건물과는 달리 겉으로는 소박하지만 매우 내실있는 사무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애덕기금회는 창립 초기 주로 교육사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개혁, 개방이 막 시작된 시기여서 사실 외부와의 교류도 쉽지 않았고 민간 영역의 활동도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특히 외부와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언어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어학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적었고, 이것은 이들이 개혁, 개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의 하나로 작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애덕기금회는 처음 외국에서 어학 강사를 초빙해 교사들의 어학훈련을 돕는 사업을 전개했다.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도 많은 성과가 있었을 뿐 아니라 애덕기금회의 국제 네트워크 형성에 커다란 도움을 주어 다른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는데 훌륭한 기초가 되었다.
현재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는 중국내륙의 낙후된 경제, 사회적 현실이었다.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높은 경제 성장률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중국 내에는 이러한 발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실업 문제와 같은 발전에 수반되는 문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10억이 넘는 인구와 광대한 영토를 가진 중국이 발전하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뤄 둘 수만은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예를 들면 1인당 연평균 수입이 300위엔(약 4만원)이하인 빈곤 인구 수는 여전히 4,000만명을 넘고 있다. 내륙 및 산악지대의 경우에는 개혁과 개방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의료, 교육 등의 혜택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 이후의 전망도 매우 비관적이다.
중국 정부도 올해 "서부대개발"을 국가 중점 정책으로 제출하여 연해 지역과 내륙 지역의 경제적 격차는 줄어들고 있지만 정부의 재정적, 인적 자원으로 볼 때, 단기간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애덕기금회도 활동의 중심무대를 초기의 연해지역에서 점차 서부 및 내륙지역을 이동해 왔다고 한다.
▼애덕 기금회의 활동방향▼
활동의 주된 내용은 서부농촌 지역의 의료보건 부문의 종사자를 위한 교육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의료사업, 그리고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긴급원조사원, 농촌 지역의 개발사업에 대한 지원, 문맹퇴치 및 교사들의 어학훈련 지원 등의 교육사업, 그리고 장애인 지원 등의 사회복지사업 등이다.
그리고 이후의 활동방향과 관련하여 애덕기금회의 관계자들은 위의 활동들이 시혜행위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그 지역의 자립능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지역의 지도자들이나 교사들에 대한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역발전 프로그램에서도 위에서 프로젝트를 정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보다는 각 지역이 자체적인 논의를 거쳐 종합적인 개발프로그램을 만들고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는 상향식의 사업방식을 시범저긍로 실시하고 있다.
본부의 설명을 들은 후 우리는 서안으로 이동해 애덕기금회의 지원을 받아 재건축되고 있는,서안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농촌지역의 한 학교를 방문했다. 이 농촌은 복음촌이라 불릴 정도로 기독교 신자들이 많은 특이한 지역이었고 이 인연으로 애덕기금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애덕기금회의 활동이 종교적 범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종교적 네트워트를 이용하고, 기독교 정신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선교를 전제로 활동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현재 애덕기금회의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자가 아니다.
▼NGO와 중국 정부와의 관계, 그리고 남는 문제▼
북경으로 돌아온후 처음부터 매우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던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다른나라의 NGO들이 중국의 사회단체는 정부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자체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애덕기금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러한 문제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에대해 애덕기금회는 정부와의 대립보다는 협조를 중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외부의 NGO단체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혹은 비판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이는 중국의 현실에 부합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었다.
특히 이들의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에는 지방정부의 협조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현재의 인적,재정적 자원으로는 중국의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 커다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의료보건 종사자에 대한 재교육을 위해서는 여러 교육 설비가 필요한데 이들을 독자적으로 마련하여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중국은 지역마다 구체적인 실정이나 문화 등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현지의 충분한 이해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애덕기금회는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지방정부의 각종 설비 및 행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지방정부가 애덕기금회의 활동에 처음부터 협조적인 것은 아니었고 경계심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지방정부가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동안의 활동의 성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애덕기금회는 여러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그 자신은 조직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구체적인 사업의 진행에는 지방정부와 지방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었다.
애덕기금회가 이처럼 국가중심의 정치사회 시스템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로 인해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현재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NGO로서 정부와의 협력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한 경우 정부에 대해 감독과 비판을 어떻게 강화할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애덕기금회망의 임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경제발전을 넘어서서 사회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중국의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남주/국제민주연대 중국정보센터소장(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