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국내 클래식 공연계는 풍성했다. 세계적 독주자와 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은 흥미로운 들을 거리를 제공했고, 국내 연주자들의 노력이 빚어낸 몇몇 현장은 뜨거웠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2002년까지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목표삼은 부천필(지휘 임헌정)의 행보다. 교향곡 4번까지의 연주를 마친 부천필은 진지한 주제의식, 철저한 준비로 애호가들을 연주회장으로 불러모았다.
임헌정의 건강악화로 앉아서 지휘해야만 했던 3번은 단원들과 지휘자의 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감동적 연주였다. 말러 외에도 현대 작곡가 백병동 음악회, 브람스 페스티벌 등을 연주한 부천필이 국내 연주계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아무리 일류를 자처해도 정체된 연주단체보다 도전하고 노력하는 단체가 더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8월,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내한 연주를 가진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민족적 정서를 높여주는 그들 고유의 음악을 선사했으며, 남한의 대중적 현대 창작곡 부재에 대한 반성을 안겨주었다. 생동감있는 연주회를 꾸려가는 민간교향악단 코리안 심포니의 중단 없는 전진도 계속 되었다.
ASEM정상회담 기념 음악회서 75분 걸리는 부조니 피아노협주곡을 아시아 초연한 백건우와 김홍재의 연주도 기념비적이었다. 첫 내한한 지휘자 김홍재는 대가급 지휘자로서의 면모가 엿보여 다음 연주를 손꼽아 기다리게 했다.
바흐 서거 250주년이었던 올해 바흐를 주제 삼은 공연도 적잖았다. 쿠이켄, 빌스마, 비스펠베이 등 정격 연주의 대가급 현악 연주자들이 내한 공연을 가졌지만, 이들에게 적합한 음향시설을 갖춘 전문 연주홀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피아니스트 강충모의 바흐 독주건반작품 전곡연주시리즈와 서울바로크체임버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전곡연주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음악을 통해 종교적 감흥을 안겨주는 서울오라토리오합창단과 서울모테트합창단도 계속 주목해야 하는 수준높은 단체다.
국내 음악계 현실에서 대중적 인기없는 슈베르트와 슈만 등의 리트(독일가곡)만을 전문적으로 노래하며, 팜플렛 포스터 제작비서 거품을 빼고, 초대권 없는 공연을 위해 동분서주한 바리톤 박흥우의 노력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0월과 11월, 애호가들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몇몇 공연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공연은 넘쳤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권에 편중된 현실과 학생 서민들에게 부담스러운 티켓값은 클래식 공연이 정신을 표상하는 순수예술문화라기보단 호화로운 볼거리라는 기존의 인식을 허물지 못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세계적 연주자들의 국내 공연을 성사시키는 공연주최자들의 노력도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일반인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저력있는 국내연주자들이 연주만으로도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국내현실에 바탕을 둔 공연기획이 시급하다.
바흐 기념 공연도 제대로 된 페스티벌 하나 없는 단발적 성격이었고, 학술적 연계하에 바흐상(像)을 파악하게 하는 심도있는 노력이 아쉬웠다. 이는 모두 음악의 외형적 표출에만 급급한 철학 부재의 현실을 드러냈다.
김동준(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