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대중음악]양희은 "손수건만 봐도 눈물이 나네요"

입력 | 2000-12-19 19:28:00


양희은(48)에게 물었다.

“요즘 행복하시겠어요. 방송(MBC라디오의 ‘여성시대’)도 자리잡았고 콘서트는 연일 매진이니까요.”

그런데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분에 넘치지만 힘들어요. 아침 6시반부터 방송 준비로 분주하고 저녁에는 노래하고, 겨우 대여섯시간 자는데 건강 관리가 무척 힘들어요. 안팎으로 감기 경계령을 내렸어요.”

그는 12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02―3272―2334)에서 시작한 콘서트 ‘겨울동창회’를 31일까지 계속 한다. 21일간 콘서트를 할만한 이는 가수는 손꼽을 정도다. 젊은 가수들도 악기(목)가 견실하지 않기 때문에 일주일만 해도 파김치가 된다. 양희은은 “타고 나야 하기도 하지만 많은 연습을 통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양희은은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을 조사해봤더니 54년∼58년생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그가 71년 데뷔했을 당시 중고교생 또래다. 중년 팬들의 마음에는 그때부터 양희은이 ‘또래 집단’의 상징으로 각인된 셈이다. 90년대 서태지가 그랬듯.

“이들은 손수건 세대입니다. 1회용 휴지에는 익숙하지 않아요. 내 노래가 그들에게 아직도 ‘힘’이 있는 이유가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온 삶의 편린같기 때문인 듯해요.”

특히 오후 콘서트는 중년 여성들이 삼삼오오 온다. ‘겨울동창회’라는 타이틀 덕분에 3분의 1 가량이 여고 동창생이고 저녁에는 기업체 송년 모임이 많다.

김희숙(43·서울 동작구 상도동)씨는 “양희은의 콘서트는 우리 또래들에게 마냥 순수했던 여고 시절을 되돌려준다”며 “콘서트를 보고 나서 서로 이야기하다보면 20여년전 조각난 추억들이 모자이크를 맞추듯 되살아 난다”고 말했다.

양희은의 ‘노래 얼굴’은 두가지다. 71년 데뷔 음반에 실린 ‘아침이슬’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그 얼굴의 출발점. ‘아침이슬’은 ‘작은 연못’ ‘늙은 군인의 노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적 저항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내님의 사랑은’ ‘하얀 목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으로 서정적 연가의 얼굴을 그린다.

“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니까 이미 내 노래가 아니더라구요. 그런 노래는 스스로 사회적 생명을 얻어요. 그런데요. 나이가 드니까 연가가 더 좋아요. 그런 노래는 부르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너무 다른 느낌을 줍디다. 해석도 여러 가지이고.”

양희은은 유독 콘서트장에서 자주 눈가를 적신다. 원래 눈물이 많지 않은데 무표정했던 중년들이 콘서트장에서 손수건을 꺼내면 순식간에 ‘찡’해진다고.

양희은은 한대수 김민기 박인희 등과 더불어 국내 포크 1세대다. 이로인해 팬들은 오랫동안 그에게 통기타 청바지 생머리를 요구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아줌마’다. 팬들이 공연장을 나오며 ‘옛 친구’를 만난 듯 그의 손을 덥석 잡는 것도 아줌마끼리의 공감대 때문이다.

그는 두 번의 큰 수술로 인해 아이가 없다.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인연은 만들지 말자고 남편과 뜻을 같이 했어요. 우리 부부는 나중에 불우 청소년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양희은의 '이런 노래 저런 사연'▼

양희은은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히트곡은 ‘세노야’ ‘백구’ ‘아름다운 것들’ ‘네꿈을 펼쳐라’ 등 30여곡. 이중 비교적 최근의 다섯곡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하얀목련(1983년)〓1982년 시한부 선고에 이어 암 수술을 받고 기력을 찾은 뒤 썼다. 미국의 한 친구가 장례식을 다녀오면서 안부를 물은 편지를 가사로 꾸몄다. ‘하얀 목련’의 ‘다시 생각나는 사람’은 생을 되찾은 나일지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년)〓1987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무명의 아낙네가 됐다. 한국의 번잡한 생활을 완전히 망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 노래에는 한가하고 고즈넉함이 배어 있다.

△내 나이 마흔에는(1995년)〓미국에서 돌아오니 적어도 가요계에서는 ‘마흔’이 사람도 아니었다. 중년이 실종된 셈. 오기가 받쳐 노래 제목에 ‘마흔’이란 단어를 썼다.

△한계령(1985년)〓80년대 들어 내 노래는 적어도 탄생 5년 뒤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그런 경우의 처음으로 1990년에 히트했고 내게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줬다. ‘사랑, 그 …’도 6년뒤인 1997년에 알려졌고 ‘내 나이…’도 5년 뒤에야 방송에 자주 나왔다.

△저 하늘의 구름따라(1999년)〓기타리스트 김의철이 고1때인 1970년에 작사 작곡한 노래로 지난해 음반에 수록했는데 유독 중년팬들이 이 노래에 운다. 삶의 흐름을 구름에 비유했는데 고 1년생이 어떻게 그런 노래를 썼을까.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