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민주당 쇄신에 대한 정치권 일반의 기대와 달리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의 김중권(金重權)대표 체제를 출범시키자, ‘진짜 그림’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김중권 카드’는 당내 역학구도의 균형을 깨뜨려 당의 단합보다는 오히려 분란의 불씨를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야(對野)관계에 있어서도 야당의 거부감으로 인해 상생(相生)보다는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김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숨은 그림’을 찾아보려는 여권 관계자들이 많다.
이들은 대략 내년 2, 3월경 정치권에 보다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민련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가 최근 “내년 봄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맥이 닿는 얘기다.
‘큰 변화’란 결국 ‘여소야대(與小野大) 현상을 어떻게 돌파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자민련과의 합당 재시도설, 개헌론, 정계개편론 등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방안이 거론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이 최근 자민련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중진인사를 만나 ‘정치는 곧 수(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며 여러 가지 조언을 구했다는 얘기는 여권이 얼마나 수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과거 3당 합당의 주역이었던 민국당의 김윤환(金潤煥)대표도 기회 있을 때마다 김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에게 “140대 133을 만들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해 왔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 형식이든, JP가 총리를 맡았던 집권초기 형식의 DJP공조이든 기본적으로 ‘수의 공조’가 이뤄져야, 김대통령이 추구하는 국정개혁이 현실적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개헌론을 매개로 한 본격적인 정계개편론이 ‘숨은 그림’일 것이라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자민련과 합당을 한다 하더라도 이탈자가 있을 게 분명한 만큼, 한나라당 내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는 정―부통령제 개헌안을 받아 개헌론을 이슈화하고, 개헌론의 탄력을 이용해 정계개편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서영훈(徐英勳)전 대표는 최근 김대통령을 따로 만난 자리에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JP를 껴안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김중권대표 체제에는 내년 봄 정치지형(地形)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김대통령의 친정(親政)의지가 감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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