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흰 속살이 먹음직스러운 삶은 오징어에 새콤한 초고추장, 잡채와 삶은 계란, 미역국….
어릴 적 생일이 기다려졌던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시듯, 저의 어머님도 제 생일이 되면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게다가 점심으로는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자장면을 시켜주셨습니다. 또 그 날만큼은 제가 어지간한 잘못을 해도 용서가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스무살 때부터 바쁜 영화배우 생활을 시작한 관계로 성인이 된 후 저는 생일을 대부분 영화촬영 현장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선후배 동료들이 촬영을 중단하고는, 저를 둘러싸고 미리 준비한 케이크에 불을 붙인 뒤 축하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리고는 생일날 촬영하게 되어서 어떻게 하느냐며 따뜻하게 격려해 줍니다.
며칠후면 예수님의 생일이 다가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러 온 성스러운 이의 탄생일이기에, ‘성탄절’이라고 붙여진 이 날의 중심은 당연히 예수님이시고, 그 분의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날을 기뻐하고 기다리며 기념합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제가 깨닫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입니다.
제가 특별히 잘나서이거나 현명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다하는 결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부터 20대까지, 제게 크리스마스는 기대와 강박이 교차하는 저 중심의 ‘명절’이었습니다. “화끈하게 보내야 할텐데…” “평생 남을 추억거리를 만들어야지” “별 볼 일 없이 지나가는 게 아닐까?”하는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광란의 불야성을 쏘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결혼 뒤의 안정은 제게서 흥분을 빼앗아가는 대신, 자신과 남을 되돌아보는 차분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해마다 결혼기념일이면 늘 가는 식당이 한 곳 있습니다. 그 곳에서 저녁을 단 둘이 함께 하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이야기하고 좀 더 나은 결혼생활을 위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믿음을 다짐합니다.
달력을 만든 선조들은 무한히 흐르는 시간에 시작과 끝이라는 빗금을 그어 반성과 계획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하는 성탄절이든, 결혼기념일이든, 모든 ‘기념’일이란 그렇게 잠시 멈추어서서 그날의 의미와 지금껏 살아온 날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내, 두 꼬마 녀석들, 어머니, 형제, 동료 선후배, 저를 사랑해주는 모든 여러분, 아니 이 땅에 계신 모든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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