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에 있는 월가는 미국 경제의 심장부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금융시장의 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 월가를 중심으로 뉴욕 증권시장을 위시한 세계 굴지의 증권회사와 은행 등 각종 금융기관이 집결돼 있다. 지난번 환란을 통해 우리 모두는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금융인과 투자가들의 시각 혹은 신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 바 있다. 따라서 월가의 국제 금융인과 경제 전문가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은 금융과 자본시장의 대외 개방도가 월등히 높아진 이 시점에서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월가의 국제금융 관련 인사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이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며칠 전 뉴욕에서는 주로 월가의 금융인들과 투자자들을 위해 ‘한국의 경제 개혁, 멎었나’라는 주제의 한국 경제 관련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토론회의 주제부터 이미 부정적인 시각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월가 한국개혁에 회의적▼
필자는 이 토론회에서 한국이 환란 이후 추진해 온 분야별 경제 구조조정 노력과 그 성과, 그리고 한국 경제의 앞날에 관한 기조연설을 한 바 있다. 연설 후 청중과의 질의 응답및 월가의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서도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이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제 거의 확실시되는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세계 경제 여건의 악화를 고려할 때 경제 구조조정의 가속화를 통한 원천적인 경쟁력의 제고가 없이는 한국 경제의 앞날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 모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한국 관련 회의에 참석하거나 한국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다수 외국 인사들은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고, 한국 경제가 더 잘돼 한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하거나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토론회 기조연설과 질의 응답 그리고 월가의 주요 인사들과의 개별 면담을 통해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는 “한국 경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라. 한국 경제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상당히 어렵겠지만 그 이후에는 정상적인 성장 궤도에 재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현재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경제위기 의식’을 이런 주장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미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동남아 각국 통화의 불안, 고유가, 반도체 가격의 하락 등 대외 여건의 악화와 함께 국내적으로는 기업 금융 구조조정의 지연에 따른 심각한 자금 경색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소비자들의 심리적 위축 등에 따른 급격한 내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국민 모두가 새로운 경제 위기의식을 갖게 됐고, 정치권과 강성 노조에서도 상당한 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야당이 경제 구조조정 관련 각종 법안과 공적자금 추가 조성에 협조하게 된 것과 대우자동차, 한전, 철도 노조의 타협도 이런 범사회적 위기 의식을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필자의 주장이 필자의 단순한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금융-기업 구조조정 서둘러야▼
앞으로 곧 다가올 대선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인기없는 인력감축이 불가피한 주요 금융기관과 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필요한 때다. 정부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경제위기 의식을 선용(善用)해 경제 개혁을 원칙을 갖고 밀고 나가야 한다. 그동안 상당히 확충됐으나 아직도 미흡한 사회안정망의 지속적인 강화와 함께 해고 근로자들의 재취업에 도움이 될 훈련 및 재훈련 기회를 대폭 늘리는 것을 물론 잊어서는 안된다. 동시에 대립적인 노사관계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해 후손들에게 더 큰 고통을 남겨준다는 점을 노―사, 노―정간 대화를 통해 그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정부의 결연한 의지로 법과 원칙이 무시된 노사관계를 바로잡고, 정치 논리에 밀리지 않는 금융 기업의 구조조정 시책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시화할 때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신뢰도는 자동적으로 제고될 것이다.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