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서울날씨는 유달리 흐리고 칙칙했다. 제주시 영평초등학교를 찾아가기 위해 떠나는 심사단의 마음도 날씨따라 자연스레 우울해졌다.
하지만 제주에 도착하니 서울서 느꼈던 마음은 어느새 싹 가시게 되었다. 항공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섬특유의 따뜻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물어물어 찾아간 영평초등학교 역시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시멘트 담 없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제주시 영평동 영평초등학교
늘 열려있어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영평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자 학교가 아니라 마치 숲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학교안은 온통 은행나무·종려나무·측백나무·가시나무 등 아름드리 나무들의 천지였고, 게다가 학교를 등지고 서면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쩜 이렇게 좋을 수가'란 말이 심사단의 입에서 절로 나올 정도였다.
특히 150년이 넘었다는 구실잣밤나무의 가지가 교문을 덮고 있는데 그 그늘이 어찌나 아늑해 보이던지 낮잠이라도 한 숨 자고 싶어 지는 걸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마을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름에는 주민뿐 아니라 지나가는 관광객도 한번쯤은 이 나무 그늘 아래 꼭 쉬었다 간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서서 얼마나 정신없이 풍경을 감상했는지 안에 들어가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잊고 있었다.
따뜻한 제주도를 닮았는지 이곳 선생님들과 아이들 역시 밝고 따뜻했다. 특히 환경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연구주임 선생님은 여러편의 환경동화도 집필하셨다고 한다.
심사단이 이곳에 특별한 애착을 느낀 이유는 바로 '생명의 숲'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학교숲가꾸기 운동의 모범이 될만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학교에 숲을 조성해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높고 답답한 담을 없애고 대신 나무를 심어놓은 데다가 학생,지역주민이 함께 숲을 만들어 가꾼다고 하니 아이들 환경교육에 가장 최상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뒤편의 영솔정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특히 학교건물 뒤편에 있는 영솔정(영평초등학교와 소나무, 그리고 정자의 합성어라고 한다)은 150년 이상된 소나무 80여그루와 나무로 만든 정자가 어우러져 최고의 자연학습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학생들의 야외수업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맨발로 소나무 아래를 뛰어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놀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영솔정은 지역주민들 교류의 장으로, 공휴일에는 주민들이 바둑·장기를 두고 붓글씨를 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이라기 보다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교장선생님이 영솔정에는 손자을 데리고 놀러오는 마을 어르신들이 많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셨다.
이곳을 쭉 둘러보고 나자 서울시내 초등학교 운동장은 마치 군대 연병장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운동장에 나무 한그루 없는 곳이 많고 교문을 제외하고는 시멘트 블록담이 학교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 태반이다.
많은 학교에서는 그나마 있는 운동장을 없애면서까지 컴퓨터실이나 체육관등을 짓기에 더 치중을 하고 있다.
삭막한 학교 주변환경 때문에 도시에서는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하는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평초등학교는 학교폭력같은 문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곳을 둘러보고 난 심사단은 모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학교숲가꾸기 운동이 현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었다.
홍혜란/생명의숲 사무처장 forestfl@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