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후보의 당선으로 끝난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사실 모든 면에서 무승부 게임이었다. 전체 투표에서는 0.005%의 차이로, 선거인단수에서는 4표 차이로, 플로리다주의 대법원 판결에서는 4대 3으로 승패가 갈렸다. 연방 대법원은 플로리다주의 판결을 5대 4로 번복하는 혼전의 선거였다.
물론 이런 박빙의 선거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 대선은 과거의 경우와는 달랐다. 국내정치를 극한대립으로 양분했으며, 공정한 선거관리가 말보다 훨씬 힘들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긴 특이한 선거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또 효과적인 국가관리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통합을 크게 훼손시켰다. 죡비/로이터 가 추수감사절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교육, 건강보험, 사회보장제도 등이 더 이상 미국인들의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선거공약으로 제시된 주요 이슈들을 과감하게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없는 정치적 공백상태에서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분열된 국론을 봉합하는데 있다.
선거 과정에서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동정적 보수주의 를 표방하며 흑인과 히스패닉계를 껴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후 실시한 죡비/로이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그룹은 부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부시가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미국 최대의 양대 소수 인종집단들이 부시의 정통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교원을 확보할 것이냐 학부모에게 더 많은 학교 선택권을 부여할 것이냐, 처방전을 보조하기 위한 보험회사의 공영화냐 민영화냐, 그리고 사회보장비의 일정 부분을 금융기관에 위임할 것이냐 정부가 직접 관리할 것이냐 등과 같은 주요 선거쟁점들에 대한 정책집행을 미국인들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원내 지도자들조차 1조3000억 달러의 세금감면을 주장한 부시의 공약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할 때 미국인들은 변화를 요구했다.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었고,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클린턴의 취임 분위기는 유명 록그룹 프릿트 우드 맥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마세요 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노래로 장식될 만큼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통치에 대한 전체 국민의 위임을 이끌어내는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고 험하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국민적 공감대의 결여가 오히려 부시 행정부를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는 이례적인 선거를 미국인들은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 필자 ▼ 죡비 회장은 현재 미국에서 정확도와 신뢰도 측면에서 가장 탁월한 여론조사 분석가로 평가받고 있다.
존 죡비(죡비 인터내셔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