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금융계가 거대한 회오리에 휩싸였다. 부실은행들이 속속 지주회사에 편입되고 대형 우량은행들이 합병을 선언하는 가운데 여타은행들의 존립도 흔들리고 있다.
금융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이 예상 이상의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점은 보통일이 아니다. 연휴가 끝나면 연말연시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지금과 같은 금융혼란이 계속된다면 기업이나 가계 운용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어 걱정이다.
국민과 주택 두 은행이 전격적으로 합병을 발표한 다음날인 23일 양대은행의 고객은 물론 여타은행에 두 은행수표를 입금했던 많은 국민이 예금취소를 당하고 봉급을 찾으려는 서민들이 돈을 찾지 못해 발을 굴러야만 했다. 모든 은행들이 하나같이 그럴 가능성에 대비한 사전 조치들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낙후된 우리 금융계의 부끄러운 현실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합병발표 그 자체를 탓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정부요구로 서두르게 된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지만 두 은행의 지점들이 이처럼 철저하게 영업을 거부하기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경영진의 책임이다. 이들 은행의 대주주인 정부는 간부직원조차 파업에 동조함으로써 국민에게 사상유례없는 큰 불편을 안겨준 은행측에 대책을 촉구할 의무가 있다.
파업중인 노조원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국가경제 전체를 살리는 희생이라지만 자신에게는 전체를 잃는 것과 같은데다 우량은행 종사자로서 지켜왔던 자존심도 구겨져 심적 고통이 클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만일의 경우 공권력이 투입돼 빚어질 불상사와 시중 자금순환이 증가하는 연말에 금융 대혼란이 빚어졌을 경우 쏟아질 비판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
국내은행원 일인당 수익률은 선진국 수준의 절반에 그치는 등 우리 금융기관들의 낭비적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은행합병은 우리 금융기관의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임에 틀림없지만 양대은행의 합병이 성공하기 위한 충분조건을 갖추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두 은행의 합병을 선택했다면 금융개혁 정책은 흔들림없이 추진되어야 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우유부단한 처신에 얼마나 많은 국민과 외국투자가들이 실망하고 있는지를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지금 노사정 모두는 최소희생으로 최대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