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벤처기업을 자부했던 한글과 컴퓨터의 전하진사장(42·사진)은 최근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방지를 위한 CF에 출연했다. 영화관에서 상영될 CF에서 전사장은 “정품 사용이 우리가 지켜야할 질서와 양심”이라고 호소한다.
지난해 범정부적인 정품사용 운동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그의 견해. 하지만 최근 출연은 지난해와는 다른 특별한 호소가 깔려있다.
한컴 주식의 올해 시가총액은 연초 2조7380억원에서 12월 19일 1864억원을 나타냈다. 무려 15분의 1로 줄어든 것. 코스닥 등록 기업 가운데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주가는 1월 최고 5만8900원에서 최근 3000원대로 가라앉아 2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올해 창업 10주년을 맞은 한컴은 1대 주주가 외국인으로 바뀌어 ‘토종’이라는 별칭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기업으로 변했다.
전사장은 “주가가 올라갈 때 최고경영자(CEO)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신중히 판단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웬만한 송년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돈버는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고 ‘자랑스런 인하인상’과 ‘연세경영자상’을 잇따라 받은 그는 올해를 ‘시장 기능을 뼈저리게 공부하게 만든 해’로 규정한다. 요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벤처기업에 대해 얘기할 때 외국인과 기업의 투명성을 단골 메뉴로 꺼낸다.
“단기성 자금이 대부분인 외국인 투자금은 국내 기업의 투명성이 의심되는 순간 해외로 빠져나가 주식 시장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투명성 문제를 해결한 기업이 저평가됐을 때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같은 인식은 한컴 1대 주주가 바뀌면서 굳어졌다. 98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거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주식 매수 공세에 맞서 온 국민과 함께 한컴 지분을 지켰는데 올해에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
주가를 보는 눈과 투자자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주가가 좋으면 오히려 불안하고 주가가 낮을 때 도약의 기회를 찾게 됐습니다. 상반기에는 투자자에게 회사의 나쁜 점은 뒤로 미루고 좋은 점만 내세웠으나 이제는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얘기합니다.”
그는 1대 주주의 변경을 한컴 글로벌화의 발판으로 삼고 주식 시장의 위기를 기업 체질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며 닷컴 기업의 희망을 얘기했다.
“인터넷 기업들이 원기를 회복하고 경기만 좋아지면 e비즈니스와 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닷컴 기업의 재도약은 이제 시작입니다. 지금까지는 성장 토양과 시스템을 정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