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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더스클럽]무한 이인규사장 '투쟁과 복귀'가 남긴 것…정위용 기자

입력 | 2000-12-24 19:29:00


'23일간의 외출?'

웰컴기술금융과의 합병 문제로 11월 27일 회사를 떠났던 무한기술투자(무기투)의 이인규 전사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했습니다.

이로써 11월 8일 이사장의 합병반대로 표면화된 무기투와 웰컴기술금융의 합병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합니다. 무기투 주식 중 웰컴기술금융의 지분은 21%에서 5% 이하로 떨어져 1대 주주의 지위를 잃게되고 이사장 중심의 지분이 다시 1위로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무기투의 '경영권 난(亂)'은 단순히 이 회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급전직하 가치가 추락하면서 갈등이 일고 감정싸움까지 벌이고 있는 벤처업계의 '현실'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20일 회사에 돌아온 이사장은 소감을 묻자 "차입금을 동원한 무리한 경영권 장악이 실패로 돌아갔다.모든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본다.주변을 정리한 뒤 벤처기업 투자 업무에 전념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본연의 길'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때 선두를 달렸던 벤처기업이자 창업투자사인 무기투의 경영진이 며칠 사이 이처럼 엎치락 뒷치락하는 것을 보면 어지럼증 마저 느낍니다.

합병을 반대한다 해서 사장에서 해임되고 또 같은 이사회가 연말로 예정됐던 임시 주총을 번복하고 쫓아낸 사장을 다시 복귀시키는 일련의 사태는 벤처기업의 현주소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사장이 물러났다가 복귀하는 과정을 '복기'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무한과 웰컴

무한기투의 최대주주였던 메디슨 이민화 회장과 이인규 사장과 원래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있습니다. 무기투 창립 초기, 이사장을 낙점한 사람도 이회장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사장이 이회장에게 반기(反旗)를 들었으니 사태가 꼬여도 한참 꼬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보기에 이사장이 이회장에게 사감(私感)을 갖고 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은 벤처기업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적은 돈을 들이고 많은 차익을 남기는 등 과실(果實)을 공유하는 사이였습니다. 메디슨이 무기투에게 출자하고 무기투가 다시 메디슨의 자회사에 투자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주가가 좋을 때 둘의 투자이익은 배가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두 사람의 공생(共生) 관계도 좋았겠지요.

하지만 이런 관계는 주가가 폭락하면서 매우 '취약한 구조'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최초의 타격은 메디슨에서 나타났습니다. 주식시장에서 메디슨의 주가와 신용이 형편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자 수많은 연방회사를 거느린 메디슨은 필연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이때 메디슨은 주가가 비교적 괜찮은 무기투의 주식을 처분함으로써 위기를 봉합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이사장이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사장도 메디슨의 주식 6%을 갖고 있었고 대표 이사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메디슨이 무기투의 주식을 웰컴기술에 팔면 최대 주주가 돼 이사장의 위치가 위태롭고 이사장의 주식 가치도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끈끈한 공생의 연이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민화회장 이인규사장 서로 사감은 없어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우호 지분을 결집하면 웰컴기술 보다 많을 수 있다"며 합병을 반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메디슨의 유동성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자료도 배포했습니다. 공생에서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일순간 무기투도 내부적으로 이민화 회장을 지지하는 직원들과 이사장의 결정을 찬성하는 직원들로 나눠어지기도 했습니다. 메디슨은 웰컴에 넘기고 남은 지분을 이사장에 시중가 보다 싸게 넘겨 이사장의 반발을 무마하려했으나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무기투 이사회가 긴급 회의를 열고 이사장에게 화해를 요청했지만 이사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한밤의 담판'으로 불린 이사회에는 안영경 핸디소프트사장, 변대규 휴맥스사장,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등 벤처업계에서 내로하는 쟁쟁한 인사들이 참석, 무기투의 운명을 놓고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그러다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이사회로부터 전격적으로 해임통보를 받았습니다.더 이상 이사장을 '멤버'로 인정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였습니다.

사태가 일단락 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평정을 거의 되찾았을 무렵 웰컴측이 무기투 인수금으로 사용한 외부 차입금이 2차 폭발을 향한 '뇌관'역할을 했습니다. 웰컴측은 150여억원으로 무기투 지분을 인수했지만 이돈은 영국의 한 복권회사로부터 끌어온 돈의 일부와 국내 개인투자가들의 자금 등으로 마련했던 것입니다. 무기투 이사장측은 사실 합병이 시도되던 때부터 웰컴측이 차입금으로 지분을 인수한 뒤 무기투의 돈으로 되갚으려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였습니다.

경영자의 철학이 벤처기업의 앞날 좌우 증명

웰컴측이 빌린 돈에 대한 자금 압박을 받으면서 무기투 경영권 장악은 실패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한 벤처기업의 유동성 위기로 불거진 다른 회사의 경영진 교체가 인수 회사의 유동성 문제에 부딪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순간이었습니다. 웰컴기술금융은 차입금을 내년 6월말까지 되갚기로 했다고 합니다.

창투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무기투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하겠지만 무기투가 이번 일로 인해 입은 상처는 매우 깊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기업인은 이번 사태를 두고 "자기 주식의 소유권과 처분권을 회사의 성장 보다 우선시하는 우리 벤처기업 경영인의 우울한 뒷모습들"이라고 평했습니다. 또 "무리한 사세 확장과 경영자 개인의 사욕이 빚어낸 사건"라고도 했습니다. 이민화 회장은 요즘 심신의 피곤에서 회복하기 위해 기(氣) 수련에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주식시장이 폭락을 거듭하는 요즘, 벤처기업의 경영자와 그의 철학이 기업의 앞날을 좌우한다는 말이 더 새삼스럽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