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멜로영화 ‘십이야(十二夜)’가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방한한 린아이훠(林愛華) 감독은 “사랑은 영원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이 말은 ‘십이야’가 어떤 영화인지를 간단히 설명해준다. 시작할 땐 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만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루한 권태와 갈등만이 남는다.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않겠다고 다짐해도 곧 반복을 거듭하게 된다.
‘십이야’는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를 스케치하고, 다시 실패가 예정된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돌림노래같은 영화다.
여성감독인 린아이훠는 사랑에 빠진 커플 중 여성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오랜 연애의 갈등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자주 공감하면서 보게 될 영화.
생일날, 파티에 오지 않은 애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봤다는 말을 들은 지니(장바이쯔·張柏芝). 애인과 다투고도 억지로 지니의 생일파티에 끌려온 알란(천이쉰·陳奕迅). 두 사람은 각자의 애인들과 결별한 뒤 새로운 연인이 된다.
이 영화는 ‘사랑은 질병이라 빨리 극복할수록 좋다’는 등의 부제가 달린 ‘제1야’부터 ‘제12야’까지 열두막으로 나눠 진행된다. 각 장은 휘몰아치는 폭풍이 곧 메마른 가뭄으로 변하는 사랑의 변천 과정을 단계별로 묘사했다.
지니와 알란은 자신들의 만남을 운명이라 생각하고(제2야) 격렬한 열정에 빠져들며(제3야) 결점까지 사랑하지만(제4야), 자존심 싸움(제5야, 제6야)을 거친 뒤 전화를 걸어도 별로 할 말이 없는 권태의 늪(제7야)으로 빠져든다.
린아이훠 감독은 남자에게 사랑은 ‘부분’이지만, 여자에겐 ‘전부’인 관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알란은 “날 사랑해?”하는 지니의 질문에 “나 일해야 돼”하고 대꾸하거나, 짧은 이별 후 지니가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할 때에도 졸음을 참지 못한다.
결국 엇갈리고 마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감독은 사랑에 빠진 남녀도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마 남성 관객은 이 영화가 전적으로 ‘금성에서 온 여자’ 입장에서 만들어져 균형을 잃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감독의 관심 탓도 있지만, 장바이쯔에 비해 천이쉰의 외형적 매력이 너무 처지기 때문. 린아이훠는 ‘금지옥엽2’ 등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이 영화의 각본, 연출을 맡아 데뷔했다. 30일 개봉. 15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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