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 5일 근무제 연내 법제화’ 방침이 결국 공염불로 귀결됐다.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 단축 특별위원회는 최근 간사 회의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 시한을 내년 2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내년 2월까지도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정 합의가 도출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정부는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에 근로시간 단축 의지를 밝혀 왔다. 또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노사 양측이 ‘자율적으로’ 합의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근로시간 단축’론의 배경 〓근로시간 단축은 올 초 민주노총이 제기한 ‘화두’였다. 민주노총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근로시간을 단축할 것 등을 요구하며 6월 총파업을 경고했다.
최선정(崔善政) 전 노동부장관은 5월26일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노사 양측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합의를 유도해 연내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처음으로 근로시간 단축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같은 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주5일 근무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같은 발언에 대해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즉흥적인 발언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실제 노사정위 산하 근로시간 단축 특위는 임금 삭감 여부, 휴일 휴가 축소 등 쟁점에 대해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위의 공익위원은 “정부는 아무런 복안도 내놓지 않은 채 노사 양측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노사정 합의의 속사정〓특위가 노사 양측의 입장만 확인한 상황에서 노사정위는 10월23일 본회의를 열어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업종과 규모를 감안해 연간 총 근로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줄인다”는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노동부도 올해 안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법정 근로시간을 현재의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사정위측은 “11월말까지 특위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해 단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특위는 두어차례 열리는데 그쳤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의 법제화 약속은 대표적인 즉흥 정책”이라고 말했다. 경총 관계자는 “노사정위가 일단 원칙적인 것에만 합의해 달라고 요청해 마지 못해 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에는 두 노총간의 미묘한 경쟁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민주노총은 “월차 생리휴가 폐지는 근로시간 단축 개악안”이라며 한국노총이 주도하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반대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 전망〓구조조정을 둘러싼 노동계 동투로 인한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논의 중단, 경제 사정의 급속한 악화 등으로 11, 12월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지지부진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약속했다 한발 빼는 태도를 보여 단축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단국대 김태기(金泰基·경제학)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노사가 서로 주고 받기식 ‘거래’를 하는데 논의를 집중할 게 아니라 거시적인 틀에서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를 파악해 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노사정위에서 노사양측이 합의하면 수용하겠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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