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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Digital]정치권 밀실공천 관행에 쐐기

입력 | 2000-12-25 19:30:00


우선 잘못된 관행의 파괴. 16대 총선을 앞둔 3월24일 서울 남부지원 민사합의1부(김건일·金建鎰부장판사)는 이른바 ‘밀실공천’을 받은 민주당 강현욱 의원의 후보자격을 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당이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기고 밀실공천한 것은 ‘헌법위반’이라고 명시했고 민주당은 당 규정을 고쳐 재공천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원칙과 일관성 없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도 도마위에 올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조병현·趙炳顯부장판사)는 11월3일 민변이 낸 사면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선거사범과 각종 정치인 비리 양산에 사면권 남용이 기여한 측면이 많다”고 비판하며 승소판결을 내렸다.

‘성명파동’을 ‘면직’으로 대응한 법무부의 조치도 잘못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고법 특별6부(안성회·安聖會부장판사)는 8월22일 대전법조비리사건 당시 성명서를 발표한 심재륜(沈在淪)전 대구고검장을 면직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검찰조직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며 심변호사의 복직을 불허했던 1심 판결을 수정한 것.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김대휘·金大彙부장판사)는 11월9일 옷로비 의혹사건 국회 청문회 위증사건 1심 판결을 통해 이 사건의 본질이 ‘이형자(최순영 전 신동아 회장 부인) 자작극’이라는 대검 중수부의 판단을 정면으로 뒤엎고 99년말 진행된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를 받아들였다.

9월8일 대법원 민사1부(유지담·柳志潭대법관)의 ‘황혼이혼 허용’ 판결과 11월23일 서울 남부지원 형사1단독 박시환(朴時煥)부장판사의 ‘영장실질심사받을 권리 박탈당한 피고인 직권 석방’ 결정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옹호해 준 것.

특히 박부장판사는 검찰과 경찰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포기시키는 관행을 방지하려고 98년 이후 3년 동안 실질심사를 받지 않고 구속된 모든 피고인들의 1심 첫공판에서 “왜 심사를 받지 않았느냐”고 묻는 집념을 발휘해 왔다.

영화 ‘거짓말’은 음란물이 아니라는 6월30일 서울지검 형사7부(문성우·文晟祐부장검사)의 결정은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결정’이란 평가를 받았다. “문화예술 작품에 대한 판단은 시장의 자정기능과 소비자인 국민의 판단에 맡기자”는 검찰의 논리는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시민단체와 재야 법조계는 5월9일 서울고법 민사합의12부(오세빈·吳世彬부장판사)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발행 무효 가처분 인용 결정과 12월5일 같은 재판부의 주가조작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은 대표적인 ‘경제정의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법원은 가처분 인용결정을 통해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을 이용한 재벌의 변칙증여 관행에 제동을 걸었고 주가조작 판결을 통해서는 처음으로 주가조작 피해액을 산정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12월7일 서울가정법원(원장 이융웅·李隆雄)이 북한주민의 호적을 되살리도록 해 달라는 남한내 형의 호적정정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남북관계의 변화상을 반영한 것. 이제 북한인도 이땅에 호적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됐음을 법의 이름으로 선포한 것이다.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