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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섬과 사람들]전남 신안군 가거도

입력 | 2000-12-26 09:58:00


◇ 남성미 물씬 풍기는 ‘가히 살 만한 곳’

우리나라의 최서남단 섬인 가거도는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뱃길로는 126마일(233km) 가량 떨어져 있다. 가거도 뱃길의 중간쯤에는 흑산도가 위치하는데, 예전에는 일단 흑산도까지 가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6시에 출항하는 일반여객선을 약 5시간 동안 타고 가야만 가거도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때에 견주면 지금의 뱃길은 아주 짧고 편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흑산도까지는 희희낙락하며 여심(旅心)을 돋우던 승객들조차 중간 경유지인 상-하태도가 가까워질 즈음부터는 지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배멀미를 잊기 위해 일부러 잠을 청하는가 하면, 아예 객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자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거도를 두고 “가도 가도 뱃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도 하고, 다시 뭍으로 나오기도 쉽지 않은 탓에 “가거든 오지 마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거도에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으로 시작되는 조태일 시인의 ‘가거도’를 구구절절마다 실감하게 마련이다.

가거도는 면적이 9.18km2에 해안선의 길이는 22k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행정구역상의 마을은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 하나뿐이다. 그러나 대리(1구) 항리(2구) 대풍리(3구) 등의 세 개 자연부락에 530여명(1999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난 1987년의 1600여명과 비교하면 십여년 만에 인구가 3분의 1로 격감한 셈이다. 그나마도 면출장소 우체국 보건소 초-중학교 등의 행정관서와 여관 슈퍼 음식점 항만 등이 들어선 대리에만 몰려 산다. 반면에 각각 50여명과 3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항리와 대풍리에는 사람 사는 집보다도 빈집이 훨씬 더 많다.

가거도에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항리마을 부근에서 패총과 함께 돌도끼 돌바늘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이 섬은 ‘닭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중국 땅과 가까워서 신라시대에는 당나라를 오가는 교역선의 중간기항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뭍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본격적으로 살게 된 것은 1800년경부터였다. 당시 이곳에 처음 들어온 나주 임씨(林氏)는 지명을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可佳島, 또는 嘉街島)라 붙였다고 한다. 1847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로 불렸고, 지금은 일제가 행정지명으로 붙인 ‘소흑산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소흑산도’란 이름을 듣기조차 싫어해서 여전히 ‘가거도’라 일컫는다.

가거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산이다. 신안군의 최고봉인 독실산(639m)이 손바닥만한 섬의 한복판에 솟아 있어서 해안조차도 죄다 깎아지른 암벽이다. 이렇듯 지형이 험하다보니 전체면적의 3, 4%에 불과한 농경지도 집 주변의 남새밭이 대부분이다. 대신에 산자락마다 후박나무 굴거리나무 동백나무 등이 울창한 덕에 여느 낙도와는 달리 식수가 풍부한 편이다. 더욱이 섬의 어디서나 흔한 후박나무는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다. 후박나무의 껍질은 건위(健胃) 강장(强壯)에 특효가 있는 약재로 쓰이는데, 전국 생산량의 70% 가량이 이곳에서 난다.

◇ 때묻지 않은 ‘가거도 8景’ 황홀… 대물 터지는 천혜의 낚시터

숲이 울창하고 해안마다 절경을 이루는 가거도는 관광지로서도 홍도(紅島) 못지않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홍도의 풍광이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여성미를 보여준다면, 가거도의 자연은 굵고 힘찬 남성미를 느끼게 한다. 특히 독실산 정상, 장군봉과 회룡산, 돛단바위와 기둥바위, 병풍바위와 망부석, 구정골짝, 소등과 망향바위, 남문과 고랫여, 국흘도와 칼바위 등의 가거도 8경은 홍도33경에 비견될 만한 절승이다. 게다가 낚시꾼들 말고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뜸하고 ‘개발의 광풍’도 미약해서 순박한 인심과 때묻지 않은 자연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광이나 피서를 목적으로 가거도를 찾는 외지인들은 별로 없다. 워낙 들고 나기가 어렵거니와 해수욕을 즐길 만한 해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래가 깔린 해변은 아예 없고, 대리 쪽의 길지 않는 갯돌 해변마저도 대규모 항만공사로 인해 반 이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은 거개 대물(大物)을 노리는 낚시꾼들이다. 주민들도 고기잡이보다는 낚시하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로써 살림을 꾸려간다. 고기 잡던 어선들은 낚시꾼을 태우고 다니는 유선(遊船)으로 탈바꿈했고, 민박집 여관 식당 등도 모두 낚시꾼들의 발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사실 농토가 거의 없는 가거도 주민들은 천상 바다에 의지하여 생계를 꾸려나갈 수밖에 없지만, 고기를 잡는 일도 생각만큼 수월하지가 않다. 대리를 제외하고는 마을 선착장에 방파제가 없을 뿐더러 일손 또한 부족해서 고깃배를 운용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가거도는 섬 전역에 산재한 갯바위와 여(礖)가 천혜의 낚시포인트다.

특히 11월 말부터 3월 초까지는 ‘5짜’(50cm) 이상의 감성돔이 속출하고, 여름철에는 끊임없이 팔뚝만한 농어와 돌돔이 ‘터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거도를 한번 찾은 ‘꾼’들은 그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마련이다. 심지어 10∼20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도 꽤 많다고 한다.

주인 잃은 집도 많고 주업이던 고기잡이도 쇠퇴 일로에 있지만, 가거도의 미래가 그리 암담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앞날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한다.

양영훈 (여행칼럼니스트 travelmak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