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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칼럼]진신식 아이벤처캐피털 대표/벤처투자의 본질을 다시 보자

입력 | 2000-12-26 15:06:00


최근 코스닥 시장의 폭락은 잔치가 끝난 뒤의 쓸쓸한 분위기 정도를 넘어서 마치 어제의 잔칫집이 오늘의 초상집으로 돌변한 듯한 모습이다. 이는 미국의 나스닥 시장도 마찬가지여서, 전세계적으로 투자자들의 자책과 후회, 암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유행병처럼 모두의 가슴을 침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과연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벤처기업 육성과 투자를 장려한 정책당국자의 탓인가? 아니면 소위 큰손들이나 부도덕한 벤처기업인 또는 국제적인 금융투기가들의 탓인가? 그도 아니면 벤처기업들을 상장시키는 데 일조한 벤처캐피털이나 장밋빛 미래를 담은 보고서를 낸 증권사 탓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결국은 어리석은 투자를 한 투자자 자신들을 탓해야 할까?

돌이켜 보면 주식시장을 포함한 시장의 걷잡을 수 없이 광포한 투기적 물결은 역사에서 자주 발생해왔음을 볼 수 있다.

멀리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나 미국의 1929년 대공황 직전의 대상승시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후반의 건설주 투기장이나 1980년대 후반의 증권주를 중심으로 한 주식의 대시세가 1990년대 초 수많은 투자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실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유명한 격언 중 하나는 "많은 투자자들이 이번만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맞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벤처 붐과 그 바닥 모를 추락도 시장의 광포한 투기적 물결의 한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맞는 말이며, 최근의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가장 큰 설명력을 제공해 주는 관점이라고 필자도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벤처투자에는 앞서 예를 든 시장의 광포한 투기적 물결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중요한 본질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의 양적 성장이 일정한 한계에 이르면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제품의 개발과 신시장의 개척, 그리고 새로운 생산방법과 관리 및 경영기법의 도입이 있어야만 경제의 계속적인 발전이 가능해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혁신 활동들은 모두 투자를 필요로 하며, 이로 인해 대부분의 경우 자체 자금을 축적하거나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 능력을 보유한 기존기업이 신생기업에 비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므로 기술 개발을 포함한 혁신 활동들은 기존 기업들 간의 경쟁 속에서 기존기업들 주도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정보통신 혁명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술 발전 속도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기존기업 조직 내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게 되어, 결국 다수의 신생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틈새가 생겨난다.

그런데 이러한 신생기업들이 절실히 필요로하는 연구개발 자금, 생산설비 자금, 마케팅 자금 등은, 이들이 기존 금융기관의 대출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신용을 축적하지 못하였음으로 인하여, 많은 부분을 벤처캐피털이나 개인투자자(엔젤)을 통해 조달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 불행한 점은,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듯이, 이러한 신생기업들이 모두 순조롭게 성장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망한 틈새 시장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이 시장이 기존기업들의 늦었지만 강력한 대응으로 인하여 시들어 버리기도 하며, 또 기존 기업들이 쉽게 대응할 수 없는 시장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하나가 아닌 다수의 신생기업이 나타나서 그들 간에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신생 벤처기업에 있어 특기할 만한 점은,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환경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동업계라 하더라도 선발자와 후발자의 차이가 매우 커서 선발자의 성장을 확인하고 유사한 후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결코 안전한 투자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벤처 투자의 어려움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벤처캐피털들이 작년의 벤처붐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 이자율에도 못 미치는 평균수익률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동안의 꾸준한 시행착오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결국 작년의 벤처 붐 속에서 투자 결실을 일궈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원천적으로 커다란 불확실성과 위험을 내포한 벤처투자를 마치 퇴근길에 복권 한 장 사듯이 의사결정하여 미래의 황금알을 꿈꾼다면 너무 염치가 없는 일이 되지 않을까?

벤처투자의 본질은, 광범한 자료 수집과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의 한계를 설정한 후, 신생 기업이 필요로하는 기술개발, 생산설비, 마켓팅의 자금을 제공하고, 그 기업이 장래에 시장에서 획득할 이익을 공유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공짜는 없다. 자신의 수익은 자신이 타인의 수익 실현에 기여한 만큼 얻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투자의 본질을 되돌아 보자. 기회는 또 다시 온다. 다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