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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파업 자영업자들 발동동]"내돈 쌓아두고 부도 맞을라"

입력 | 2000-12-26 18:40:00

'정말 너무하네요' 항의하는 고객


고객들도 은행들도 모두 지친 하루였다.

국민―주택은행의 88개 통합점포라고 발표된 지점 중에서도 열리지 않은 곳이 많아 시민들은 열린 점포를 찾아 헤매야 했다. 그나마 열린 점포에는 순번표만 1000번에 육박할 정도로 고객이 몰려들어 돈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이같은 고객 불편은 각 시군에 하나꼴로 통합점포가 운영된 지방의 경우 더욱 극심했다. 무엇보다 연말 결제 수요에 몰린 중소업체와 자영업자들은 ‘부도 위기’의 칼날이 목끝까지 다가옴을 느껴야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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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돈을 찾지 못하면 부도가 나요”〓26일 오전 10시반 서울 중구 남대문로 국민은행 본점. 닫힌 점포 문앞에서 김하나씨(22)는 청원경찰에게 매달려 발을 동동 굴렀다. 충무로에 소재한 인쇄업체 S사의 직원인 김씨는 사장의 심부름으로 어음 결제자금 7300만원을 찾으러 온 길이었다. 이 회사는 매출대금이 모두 국민은행 계좌로 입금되고 있다. 돈을 찾아 이날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을 막아야만 부도를 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거액이라 자동입출금기에서는 찾을 수 없고 은행 창구에서 밖에 찾지 못한다”며 “그런데 이렇게 찾지 못하니 돈을 쌓아두고 부도를 맞게 될까 겁난다”고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청원경찰의 말을 믿고 1시간 가량을 기다린 김씨는 끝내 점포 문을 열지 않자 광화문지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곳에서 만난 또 다른 자영업자 손모씨(43)도 거래업체 결제 자금 1억원 가량을 인출하러 왔다가 끝내 그냥 돌아가야 했다. 손씨는 “우리 같은 국민은행 거래기업이야 부도를 유예해주겠지만 거래하는 업체들이 돈을 받지 못해 어음결제를 못할 경우에는 거래 은행이 다르기 때문에 부도처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거래하는 중소업체만 약 1만2000여개. 이들은 대부분 중소상인 자영업자 중소기업들로 연말에 자금결제가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연쇄부도가 현실로 다가올 것임을 현장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 시내 방황한 시민들〓같은 시간 국민은행 본점 앞에는 한 50대 여성이 본점 경비를 벌이고 있던 전경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오늘 수유지점이 문을 연다고 해 아침 일찍 찾아갔으나 문을 열지 않았다. 그쪽 경비직원이 본점에 찾아가 보라고 해서 1시간 걸려 왔는데 여기는 왜 문을 열지 않았느냐. 고객들을 데리고 장난하는 거냐.”(고객)

“옆 은행 자동입출금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쪽으로 가봐라.”(전경)

이 50대 여성은 연말에 치를 아파트 잔금을 찾기 위해 서울 시내 국민은행 점포를 일일이 찾아다니고 있었다.

“자동입출금기는 1000만원밖에 인출할 수 없다는데 오늘 찾아야 할 돈이 2000만원이다. 오늘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연체료를 내야하는데 연체료도 은행에서 내주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이날 오후 신한은행 서울 여의도 지점을 찾은 천희동씨(64·서비스업)는 “주택은행 카드로 돈을 찾아야 하는데 기업은행과 신한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찾을 수가 없다”며 서둘러 딴 곳을 찾아나서는 등 오늘 시민들은 하루종일 ‘돈을 찾아’ 서울 시내를 누벼야 했다.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