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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매거진]안면도 모래언덕  파괴하는 관광도로

입력 | 2000-12-27 14:11:00


토라진 여자친구를 위해 자동차로 커다랗게 ‘사랑해’를 쓰던 광고 속 정우성의 웃음 뒤로 드넓게 펼쳐지던 멋진 모래사장을 기억하는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일곱번째로 큰 섬인 태안군에 속해 있는 안면도 삼봉해수욕장이다.

안면도에는 아직 사람들 발길로 훼손되지 않은 깨끗하고 좋은 해수욕장이 섬 전체에 널려 있다. 육지와 안면도를 연결하는 연육교를 지나면 백사장해수욕장을 시작으로 해안가를 따라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방포, 꽃지, 샛별, 장삼, 장돌, 바람아래 등 지도에 나와 있는 것만 12개에 이른다.

이것 말고도 해안가를 따라가면 이름 없지만 맑고 깨끗한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지천이다.

게다가 태안지역은 해안지역 전체에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해안사구(모래언덕)가 잘 발달돼 있어 마치 이곳이 사막 어딘지 착각할 정도로 희귀한 생태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얼마전 학계의 연구 결과 안면도 사구는 그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국내 최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사구를 파괴할 도로▼

그러나 최근 이 해수욕장과 사구를 관통하는 해안관광도로 공사가 시작돼 문제가 되고 있다.

충남도와 태안군이 추진하는 이 해안도로는 안면도 초입의 백사장 해수욕장을 시작으로 해안가 해수욕장들을 관통하며 꽃지해수욕장까지 10.127km에 이르는 것으로, 2002년 열리게 될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의 진입로이다.

문제는 도로 노선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해수욕장을 관통하는데다 생태적 가치가 특히 높은 것으로 드러난 삼봉에서 두여해수욕장에 이르는 사구 5.5km 구간이 몽땅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전된 사구지역이 한 번의 꽃박람회를 위한 진입로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태안군과 충남도의 해안도로 공사계획이 진행되던 중, 서산태안환경연합과 서울대 지리학과 유근배 박사팀이 도로계획노선에 대한 조사를 시작, 지난 10월에는 도로구간의 50% 이상이 해안사구와 갯벌을 관통하며 그 중 파악된 사구가 세계적인 사구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 10월 31일 충남도청과 도지사, 관계공무원과 충남환경연합은 해안사구와 갯벌통과노선에 대한 재조사 후 노선을 변경할 것에 합의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11월 1일, 태안군은 전날 합의와는 별개로 해안도로가 시작될 백사장해수욕장에서부터 사구를 절개하는 도로공사를 강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3일부터 서산태안환경연합은 주민들과 함께 합의를 무시한 공사중지와 합의이행을 촉구하며 백사장 공사장 현장에서 천막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다음날인 4일 태안군은 일단 공사를 중단했다.

▼자연환경을 파괴하며 진행되는 안면도 개발▼

현장취재를 위해 안면도로 내려간 11월 8일은 충남도와 충남환경연합이 환경부 자연생태과,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의 관계자들과 함께 도로노선에 대한 현장 공동조사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수십명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사실 해안도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청회랍시고 형식적으로 한 번 한 것 외에는 주민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조사 시작점인 백사장해수욕장은 도로노선 시작점으로 지난 1일 몰래 시작한 공사강행으로 안면도의 상징인 해안가 소나무가 이미 수천그루 잘려나가 깊고 울창했던 송림은 가운데가 ‘휑’하게 뚫려 있었다.

안면도의 사구는 송림에 가려져 있어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해안가 바로 앞에서 마을쪽으로 수백미터 앞까지 사구지역으로 그 높이가 30m에 이른다.

서울대 지리학과 유근배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안면도 사구는 1만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길이만 20km가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사구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사구의 상당 부분이 방파제나 도로, 혹은 해수욕장의 백사장 모래의 유실을 막겠다고 여기저기 만들어놓은 옹벽 때문에 이미 훼손된 상태예요. 그나마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삼봉과 두여해수욕장에 이르는 사구마저 이번 해안도로 구간에 고스란히 들어가게 돼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주민들 생업의 터전이기도 한 안면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무슨 안면경제개발이니, 주민생계발전이니 합니까?”

서산태안환경연합 이평주 사무국장은 안면도 관광개발은 안면도 자연환경에 뿌리를 두는 것인데 그것을 훼손하며 도로니 호텔이니 지으면 뭣 하냐고 자치단체의 생각없는 개발논리를 개탄했다.

삼봉해수욕장에서 공사현장사무실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 다리를 만들겠다고 야트막한 둔덕 가운데를 잘라놓았는데, 사람 키를 훌쩍 넘기고 층층으로 드러난 속살은 수백 수천년 동안 차례로 쌓인 사구임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했다. 도로를 만들겠다고 사구 가운데를 그렇게 절개해 버린 것이다.

▼"사람 살자고 질 내는디, 사람 죽으면 뭐하러 질 내는겨?"▼

“사람들이 살자고 질을 내는기지, 누구 땜에 질 내는겨? 동네 사람들 다 죽고 질 나면 뭐 하는겨. 사구 없어지만 농사질 수 있는겨?”

“나는 삼봉 사는 사람이여. 삼봉에 도로가 난다고 하는디, 지역민들에게 경제적 도움이 된다고 하는디 어떤 도움이 되냐 이 말이여. 사구가 없어지마 바닷물이 땅속으로 들어온다 하든디, 그라믄 농사허는 사람은 농사 망치고. 송림이 좋아 삼봉으로 야영오는 사람들 많은디, 이자 질 땜에 송림 없어지만 누가 오겠는겨? 그라믄서 지역민들 위한다 워쩐다 해쌌고 있어. 도로 냄시 우리 의견 쪼매라도 들었는가?”

“안면도는 농사짓는 면적이 적고 나 든 분들이 많어요. 그래서 지가 사는 두여해수욕장 근처는 민박마을로 아예 지정됐어요. 근디 바다쪽으로 질이 나 우리 안면도 자연환경은 말도 못허고 주민들 생계에 엄청난 타격이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겄어요. 지발 바다를 비껴나가는 노선이었으면 좋겄어요.”

주민들 요청에 못이겨 조사를 끝내고 공사현장사무실에서 다급히 가진 설명회 및 공청회 자리에서는 주민들 얘기가 빗발치듯 흘러나왔다. 그동안 쌓였던 주민들 불만이 쏟아진 것이다.

태안군 최문환 부군수는 이 자리에서 그간의 도로건설 계획을 설명했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개발이 늦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근간 해수욕장 주변 민박이 늘고 태안이 화훼단지로 커가면서 희망이 보입니다. 이 분위기를 2002년 꽃박람회와 연계하기 위해 육지와 안면도를 해안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 도로는 안면 관광과 영농을 위한 도로로 안면의 경제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겁니다. 우리는 환경심의위원회의 심의도 받고 환경부로부터 최종허가도 받아 법적 하자가 없습니다. 우리도 여러 입장을 듣고 환경을 최대로 고려해 최적의 조건으로 노선을 정했습니다.”

주민들의 하소연이 어떻든 환경단체의 환경파괴에 대한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그는 계속 안면주민들 경제가 좋아지고 환경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지막에 그가 한 말은 지역자치단체가 개발과 환경보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대한 복원력을 가진 자연, 그러니 파괴해도 된다?▼

“자연은 위대한 복원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파괴되고 나서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회복이 됩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꽃박람회까지 늦지 않게 도로를 내는 것입니다.”

동해에는 7번국도가 있는데 서해에도 그만한 해안도로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게 태안군과 충남도의 변함없는 생각인가.

그래도 태안군은 이 날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요청으로 사구를 관통하지 않고 주민들 의견을 수렴한 대안노선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1월 14일 대전일보에는 공사강행의지를 밝히는 태안부군수의 글이 실려 눈가리고 아웅하는 지자체의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다.

10년전 안면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며 울부짖었던 주민들은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있다.

“자연환경 파괴하는 사람들이 모두 관사람들, 권력자들이여. 수십년간 터을 잡고 살아온 우리 땅을 이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파괴해도 되는거여? 그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안면도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거여?”

황숙희/환경연합 '함께사는 길' 기자 hwangsh@kf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