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오름세가 좀처럼 약화되지 않고 있다. 환율 상승이 당분간 이어져 달러당 1300원까지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지면서 하루라도 먼저 달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탓이다. 외환당국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구두개입’과 달러공급을 통한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환율 왜 오르나〓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달러수요가 많은 ㈜SK 관계자는 “최근 환율이 급등하는 가장 큰 요인은 국민 주택은행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지면서 수출업체 등 달러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달러를 팔지 않고 수입업체는 하루라도 먼저 달러를 사려고 나서면서 환율이 뜀뛰기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엔―달러환율이 작년 8월 이후 16개월만에 114엔대로 떨어지고 대만달러도 33대만달러선을 돌파하는 등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가세하고 있다. 태국 바트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등 97년 통화위기에 빠졌던 나라의 환율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가람투자자문 박경민 사장은 “내년에 엔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달러화는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유로화는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원―달러환율은 이런 움직임 속에서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고 기업 금융구조조정 지연에 따라 성장률도 떨어지는 등 경제기초여건(펀더멘털)이 점차 안좋아지고 있는 것도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 흑자가 내년에 45억달러로 올해(100억달러 추정)의 절반에도 못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KDI는 내년 성장률 전망을 5.4%에서 5.1%로 낮추었다.
▽얼마까지 오를까〓한국의 경제여건과 엔화약세 등을 감안할 때 달러당 1300원까지는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삼성증권 이남우(李南雨) 상무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과 아시아국가 환율 추이를 감안할 때 1300원까지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팔라 가수요를 유발함으로써 적정 수준보다 훨씬 많이 오르는 부작용마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도 “달러를 팔려는 물량이 너무 없어 소량의 매수주문만 나와도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며 “하루에 3억∼5억달러 정도 공급되지 않는 한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환당국의 안정 의지가 중요〓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환율이 뜀뛰기를 시작한 22일부터 매일 구두개입과 물량공급을 통해 환율 안정에 노력하고 있다. 재경부는 27일에도 △은행권의 외화자산 대손충당금 수요가 일단락됐으며 △거주자외화예금이 108억달러선에서 큰 변화가 없고 △12월 들어 외국인의 주식순매수가 상당했고 무역수지도 15억달러 이상 흑자를 기록할 것이며 △대규모 물량이 일시 유입될 경우 상황이 급반전될 가능성이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그럼에도 환율이 1275원까지 치솟자 포항제철을 통해 1억달러를 공급함으로써 1250원대로 끌어내렸다. 다만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에 도움이 되는 만큼 환율상승 자체를 억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승속도를 조절하는 선에서 개입이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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