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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학과 조지형교수 "정보 공유-비판 통해 지식 재창조"

입력 | 2000-12-27 19:19:00


인터넷 사이트 ‘미국사(American History)’(http://cyber.ewha.ac.kr/∼american). 첫 장을 열면 ‘강의계획서’ ‘미국사개설’ ‘미국의 주(States)’ 등의 항목이 눈에 띈다.

‘미국의 주’를 클릭하면 미국 지도가 펼쳐진다. 50개 주 중 하나를 클릭하면 그 주와 관련된 친절한 설명과 사진들이 나타나고 주의 공식 홈페이지도 링크돼 있다. 이렇게 몇 번의 클릭을 하다 보면 미국과 미국사에 대한 개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이다. ‘팀 프로젝트’라는 제목 아래 아홉 개의 항목이 링크돼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생활사’ ‘식민지 시대의 정치’ ‘1960년대 미국의 문화’….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프로젝트의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내용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하이퍼텍스트로 링크 표시가 돼 있고 이를 클릭해 가면 보충 설명이나 반론,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인터넷 홈페이지와 하이퍼텍스트 방식을 이용해 풍부한 정보와 아이디어가 담긴 사이트를 만든 것은 이화여대 사학과 조지형(趙志衡·37) 교수와 그의 ‘미국사’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다. 조 교수는 이런 공부방식을 ‘디지털 인문학(Humanities Computing)’이라 부른다.

기존에 인터넷을 이용한 강의는 대부분 강의안이나 동영상 강의를 인터넷에 올리고 게시판을 통해 질의 응답과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조 교수가 시도하는 ‘디지털 인문학’은 학생들이 팀별로 주제를 맡아 각 주제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이에 대해 다른 팀 학생들이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비평과 토론을 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방법이죠. 중고등학교 때의 공부가 정보 수집의 단계였다면 대학시절의 공부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비판하고 해체해서 공유하며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조 교수는 학생들이 기말시험이라는 결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적 자극을 받으며 ‘지식 이해’의 단계에서 스스로 ‘지식 만들기’의 단계로 나가도록 한다는 데 ‘디지털 인문학’의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인문학이 넘어야 할 벽도 만만치 않다. 지난 학기 조 교수의 ‘미국사’를 수강신청한 학생 60여명 중 3분의 2가 탈락했다.

디지털 인문학에 적합한 웹 저작 도구가 개발되지 않은 데다 학생들 대부분이 하이퍼텍스트를 다루는 데 익숙치 않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점은 웹 저작 도구를 다뤄 본 학생이 많아지고 기술도 개발되면서 점차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식의 공유에 대한 인식이다.

“지식은 서로 링크하며 공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잘 수긍하지 못하더군요. 창조성에 너무 집착해서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자기 것’의 경계가 약화되는 것을 꺼려해요. 정보가 서로 공유될 때 더욱 잘 활용되고 더 많은 창의성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아직 못 받아들이는 겁니다.”

‘디지털 인문학’이 과연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정보사회의 지식 공유와 창조를 실천해 가는 학문으로 정착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