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주가 대폭락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금융계를 주름잡던 많은 인물들이 쓸쓸히 퇴장했다. 99년 ‘바이코리아’를 내세우며 전국적인 주식투자붐을 조성한 현대증권 이익치 전 회장은 현대그룹 ‘왕자의 난’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자취를 감췄다. 연간 수익률 100%로 뮤추얼펀드의 새바람을 일으킨 미래에셋 박현주 사장은 주가폭락으로 펀드가입자들의 돌팔매를 맞았다.
이처럼 금융계 거물들이 하나둘 스러져가는 자리를 대신하는 듯했던 젊은 벤처인들은 윤리의식을 상실한채 고유사업보다는 교묘한 금융기법을 활용한 ‘머니게임’에 치중하다 결국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코스닥폭등으로 경제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리타워텍 최유신회장(미국명 찰스 스팩만)은 주가폭락으로 2조5000억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반면 올 한해를 빛냈던 신진세력은 기존의 제도권 마인드를 탈피하는 과감성과 예측력으로 자신들만의 고유영역을 지켜가고 있다.
▽주택은행 김정태 행장〓인물난 속에서 그나마 튄 사람으로 통한다. 10월초 주택은행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켜 금융기관의 뉴욕상장 1호를 일궈냈다. 김 행장은 10월부터 은행권을 뜨겁게 달궜던 우량은행간 합병시나리오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국민―주택은행 합병 발표 이후 노조파업 등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다. 합병발표 후에도 국민은행 김상훈 행장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얄밉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주택은행 내부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서울은행 강정원 행장〓전문경영인으로 입성해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도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커다란 일을 해냈다는 평가다. 올 8월 워크아웃중인 (주)우방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을 거부한 것은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의 강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퇴출결정을 내림으로써 그이후 동아건설과 대우자동차 처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외국계 은행에서만 근무한 경력 때문에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키움닷컴증권 김범석 사장〓옛 재무부 관료출신으로 올초 금융감독위원회 은행담당과장을 그만두고 온라인전문증권사 CEO(최고경영자)로 변신해 성공했다. 금감위 재직시절 서울.제일은행 매각 등 굵직한 금융구조조정사안을 처리한 바 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한 키움닷컴증권을 5월4일 출범시켜 1년도 안돼 1위 자리를 굳혔다. 미국 온라인증권사 전문평가기관인 고메즈에서 종합성적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온라인거래 약정규모는 월 2조원.
사업초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10월부터는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광고모델에 트롯트가수로 유명한 ‘이박사’를 등장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압구정동 미꾸라지〓선물거래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은 인물. 서울은행 증권팀 출신으로 세간에는 ‘윤실장’으로 알려져있다. 99년부터 주가지수선물의 방향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올해는 100억원 이상의 수익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투기적선물거래를 주로 하되 장중 사고팔고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2∼3일 일정한 포지션을 가져가는 타입이다. 한때 ‘목포세발낙지’로 잘 알려진 장기철씨(옛 대신증권 목포지점 영업부장)와 함께 투기적선물거래 시장의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시스템 트레이딩 전문 부티크인 신아투자자문도 윤실장에게서 매매기법을 배웠다.
▽푸르덴셜생명보험 황훈선 설계사〓‘백만달러원탁회의(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일반인에겐 도대체가 낯선 이름이지만 보험설계사라면 고개를 돌려 다시 보는 이름. 이는 연간 수입보험료 1백만 달러 이상, 신계약 수수료만도 5만5000달러(약 6000만원) 이상인 설계사들의 모임이다. 그만큼 회원에 가입하기 힘들다. 그는 그렇게 어려운 MDRT회원 자격을 97년부터 4년연속 획득해 보험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 영예를 혼자만 누리지 않기 위해 한국MDRT협회를 만들었다.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