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3일 오전 평양공항에서 남북정상이 두 손을 맞잡으면서 남북관계와 주변정세가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15년만에 이산가족상봉이 재개되고, 당국간 대화 채널도 여러 개로 늘어났다. 남북교역 규모도 크게 늘어났고 사회 문화 분야 교류도 많이 이뤄졌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도 고위급 상호 교환방문을 통해 적대관계 청산을 선언하고 미국 대통령의 방북문제를 협의할 정도로 해빙의 물꼬가 트였다.
북―일 수교협상이 재개되고, 유럽 국가들의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이어지고 있다. 남북간에는 햇볕정책으로, 국제적으로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전략’을 통해 남북공존시대를 열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구상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 현실화되기 시작한 한 해였다.
▼군사적 긴장완화 순차적으로▼
군사적 긴장완화와 관련해 정상간에 명문화된 합의가 없었고 국방장관회담에서도 긴장완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원칙에만 합의했다고 해서 불안해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완화는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경제 사회 문화 교류 협력 활성화→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군사적 긴장완화’의 순으로 문제가 풀려나간다는 것이 통설이다. 정부로서는 “주기만 하고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전후사정을 설명해주고, ‘평화비용’ 지불과 결과 확인에는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납득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도 예견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는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도 해야할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과의 협조를 재확인하고 다질 필요도 생겼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햇볕정책을 지지는 하겠지만, 전략전술 면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와 차이를 보이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부시의 보좌진이 대북정책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한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로서는 부시 행정부와의 정책조율을 서둘러 정책 공백이나 낭비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북쪽에 마구 퍼주니 경제가 거덜났다”는 주장이 먹혀드는 것이 최근 실정이다. 정상회담 이후 희망에 부풀어 있던 국민분위기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싸늘하게 식었는가? 아마도 경제사정 악화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에 정파적 이유나 이념적 성향 때문에 남북관계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한마디’가 경제 때문에 불만인 사람들에게 여과없이 증폭된 결과로 이런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권위주의시대의 방식인 정책성과의 일방적 홍보방식에 안주하지 말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직접 설득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책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정책 홍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정부와 여론지도층간의 대화도 활성화돼야 한다. 정파적 이유나 정치적 색채가 강한 비판이나 비난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혀나갈 수 있다. 약간의 비판만 해도 냉전 수구세력으로 찍힌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면 심각한 문제다.
▼국민속으로 들어가 설득해야▼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여론지도층에 접근해 대화하면서 협조와 지지기반을 넓혀 나가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진 결과로 남북관계 열기가 식어가는 상황이지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이를 위한 동력으로서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공존과 통일로 가는 중심축은 물론 남북대화와 협력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우리 내부의 대화와 협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작업의 이니셔티브를 북한이나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고, 그 추진력이 우리 내부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정세현(전 통일부차관·경희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