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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흥행 주역 '송강호' 신예 감독 '류승완'의 대담

입력 | 2000-12-28 19:08:00


영화배우 송강호(33)와 류승완 감독(27)에게 2000년은 잊지못할 한 해다. 송강호는 올해 한국영화 중 흥행 1, 2위인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의 주연을 맡았고 류승완은 독립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올해 가장 각광받은 신인 감독. 주류 무대의 스타 배우와 시스템 바깥에서 안으로 화려하게 입성한 신예 감독이 2000년을 보내며 서로를 인터뷰했다.

류승완〓올해는 ‘송강호의 해’가 아닌가 싶네요. 흥행 돌풍을 몰고온 ‘공동경비구역 JSA’도 좋지만, 상대적으로 그 빛에 가린 ‘반칙왕’도 다시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강호〓‘반칙왕’은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찍었고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됐던 영화예요. ‘공동경비구역 JSA’는 흥행 기록도 중요하지만 관객에게 정서적 파장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류감독에게도 올해가 특별했죠?

류〓엄청난 행운이 따른 반면, 엄청난 혼란을 겪은 해였죠. 관객이 1만명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8만명이 봐줬으니까. 기분이 좋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찬사에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송〓‘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고 류감독은 순수한 감성이 살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술’하려고 폼잡지 않고.

류〓그 영화가 내게 남겨준 가장 큰 자산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이예요. 사실 영화 망하면 다시 고구마 장사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위대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욕심보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송〓맞아요. 내 모자란 곳을 채워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공동경비구역 JSA’나 ‘반칙왕’도 감독과 제작자를 잘 만나 얻은 복이죠. 말없이 일해준 스탭들에게도 고맙고.

류〓올해는 ‘공동경비구역JSA’와 ‘섬’처럼 크고 작은 영화가 공존해서 좋았어요. ‘배우가 없다’고들 하는데 올해는 배우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송선배나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개성이 다양하고 카메라 앞에서 멋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는 배우가 영화를 빛내줬으니까.

송〓보여줄 멋이 없어서 그런 거야.(웃음) 나는 흥행 대작보다 영화의 정서적 힘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올해 소재의 다양성이 잘 추구되지 않은 점이 아쉬워요. ‘안해봤으니 이것도 해봐야지’보다 ‘이 소재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데 진부한 소재도 새롭게 이야기해보는 다양성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생각해요.

류〓올해 본 최고의 외국영화가 ‘스페이스 카우보이’였는데 할아버지 배우들의 연륜이 드러나잖아요. 나같은 애도 영화 만들지만 임권택 감독님 연배의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하비 키이틀처럼 독립영화의 단역도 마다않는 스타 배우들이 늘었으면 좋겠고….

송〓독립영화에 출연할 의사는 얼마든지 있어요.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류감독에게) 근데 너는 아직 시나리오가 없잖아.

류〓아, 그런가.(웃음) 송선배는 평생 연기할 기회가 단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송〓역사적인 인물. 이름없는 인물이지만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류〓송선배가 ‘태백산맥’의 염상구 역을 맡으면 딱 맞을 것같아요.

송〓나는 ‘태백산맥’의 염상진이 생각 나는데. 왜 그가 매력적이냐면 ‘인간의 신념이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하잖아요. 역사를 살아온 인물의 힘은 대단하죠.

류〓‘넘버3’에서 조필(송강호)의 신념도 못지 않죠.

송〓조필이 울부짖는 신념은 팝콘을 먹으며 볼 수 있지만, 염상진의 신념은 그렇게 못보죠. 요즘 개인적으로도 진실의 힘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얼마전 최민식 선배가 “우리 연기자는 고도의 사기꾼”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체성에 대한 성찰도 절실히 필요한 것같아요. 나는 코믹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삶의 진실이 묻어나는 연기를 잘 하고 싶어요. 내가 열심히 산다면 관객들도 송강호의 조금씩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겠죠.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