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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재즈]"젤리 롤 모튼 빠진 Jazz는 없다"

입력 | 2000-12-28 19:53:00


20세기 초 뉴올리언스를 무대로 활동했던 재즈 음악가 젤리 롤 모튼은 자신이 재즈라는 음악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뉴욕과 같은 북부 도시에서 활동했던 재즈 음악가들은 그를 무시하고 경멸했다. 그의 음악과 성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모튼은 재즈 음악가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다시 살아나 재즈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작곡가였다는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본명이 페르디난드 라모테인 모튼은 1890년에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이 도시의 교향악단과 오페라단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10대가 되었을 무렵 그는 이 도시의 홍등가인 스토리빌로 흘러 들어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재즈 음악가들이 화려하게 꾸며진 매음굴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재즈라는 음악이 막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때였다.

모튼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으며, 앞니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었고, 뉴올리언스 출신이 아닌 음악가들에게 그들의 음악은 불쌍할 정도로 한심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도박 매춘 알선 사기 등으로 돈을 벌었다. 그래서 듀크 엘링턴 같은 북부 출신의 음악가들은 그를 별로 위대하지도 않으면서 위대한 척하는 허풍쟁이로 여겼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모튼의 명성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부 재즈 팬들은 조지 울프가 만든 이 뮤지컬 ‘젤리의 마지막 연주’가 모튼을 자신이 흑인임을 부정하고 루이 암스트롱을 경멸했던 인종차별주의자로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 덕분에 모튼의 음악에 사람들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1992년에 그레고리 하인즈가 출연했던 브로드웨이 공연이 큰 기여를 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재즈 음악가들과 학자들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모튼의 곡들을 새로 찾아내 연주하고, 레코드를 제작하는 작업을 꾸준히 계속해 왔다. 특히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갠잼(Ganjam)’이나 ‘오 베이비(Oh Baby)’ 등은 명곡으로 꼽힌다.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인문학 페스티벌에서는 시카고 재즈 앙상블이 새로 발견한 모튼의 곡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 축제에 참가했던 재즈 비평가 하워드 리치는 모튼이 말년에 이르러 “슈트라우스나 베토벤만큼 꼼꼼하게 작업을 했다”며 이 때 쓰여진 작품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평가했다. (http://www.nytimes.com/2000/11/28/arts/28JEL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