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 혀를 차게 하는 기발한 개인기, 그리고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남과 다르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는 코미디계에서 '스타'라는 호칭이 붙으려면 최소한 이런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처럼 가끔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일도 벌어진다.
개그맨 김용만(33). 91년 데뷔해 올해로 코미디에 입문한지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카메라 앞에 섰지만 김용만은 지금도 전혀 개그맨 분위기가 아니다. 단정한 이미지에 조금 내성적이고 새침해 보이는 그는 웃음을 위해서라면 작두 타는 무당처럼 신기가 들리는 다른 개그맨들과 느낌이 다르다. 연예인보다는 오히려 수출업무에 종사하는 대기업 직원이나 촉망받는 엘리트 공무원 같은 정돈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단정한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무대와 관객만 주어진다면 다른 것은 필요없다는 타고난 '희극인'이다.
데뷔한지 10년된 그가 MBC 코미디 대상을 수상한다. 조용히 한눈 팔지 않고 한길만 걸어온지 10년만에 그의 노력이 드디어 큰 결실을 맺은 것이다. 2000년 그 어느 해보다 알찬 수확을 거둔 그를 만났다.
- 올해 유난히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친 것 같습니다. 상반기에는 아픈 곳이 많았고, 하반기에는 방송활동이 유난히 활발했고 대상까지 수상하고….
올해 초는 방송일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들었어요. 특히 3월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을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죠. 이러다가 영영 카메라 앞에 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수술도 무사히 끝나고, 여름부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코미디언인 저로서는 최고로 행복했죠.
- 이런 말 하면 좀 미안하지만 왜 그렇게 많이 다쳐요. 제가 알기로는 그 전에는 다리를 다쳤던 것 같은데….
저는 1년에 한번은 다치는 것 같아요. 허리가 아프기 전에는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다리 인대를 다쳤죠, 그전에는 매니저와 농구하다가 왼쪽 다리를 다쳤죠. 이것도 제 팔자중 하나인가봐요.
- 결혼 이후 방송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나요?
맞아요. 저도 결혼 후 방송에 임하는 자세가 변했다고 생각해요. 그전에는 몸을 사린다고 할까? 너무 조심스럽게 행동했어요. 오죽하면 PD들도 '제는 좀 부담스러워'라며 말 걸기를 싫어했을까요. 하지만 결혼 후 스스로 안에 쌓았던 벽을 깨니까 너무 편해요. '왜 진작에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라니까요. 또 한 가정의 가장이 되니까 생각도 많아지고 일상에서 받는 느낌도 달라지더라구요. 전에는 생각이 부족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는데, 요즘은 연기나 방송활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조금 깊어진 것 같아요.
- 김용만하면 개그맨 보다는 순발력 좋은 MC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저에게는 부담이 돼요. 저는 개그맨으로 출발했고, 계속 개그맨으로 남고 싶은데 전문MC로 볼 때 서글퍼요. 아마 데뷔시절부터 2시간짜리 생방송 MC를 맡는 등 코미디보다 진행에 치중한 것이 그런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언젠가는 코미디 시상식 때 MC 부문 특별상을 받았거든요. 잘하라고 주는 상인데도 불구하고, 주위 동료들에게 부끄러웠어요. '내가 왜 MC로 상을 받아야 하나'라는 자격지심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나 처럼 전에는 안하던 프로그램에 출연했죠.
- 10년간 함께 있어온 단짝 김국진씨와 비교될 때 솔직히 기분이 어떻세요?
국진이형과는 말을 안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 정도로 통해요. 고생도 함께 많이 했고. 경쟁자라기보다는 제가 보면서 배우는 선배죠. 물론 전에 길을 걸을 때 주위에서 '저사람, 김국진 옆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속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제가 열심히 안했기 때문에 듣는 소리인데요. 그래도 요즘은 목소리만 듣고도 저를 알아보는 분들도 생겨서 즐거워요.
- 방송에 잘 가족이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데…?
일단 아내가 방송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싫어해요. 저도 아내가 굳이 싫어하는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 그냥 가정은 제 개인의 공간으로만 존재했으면 해요. 사실 연예인이면서 이렇게 사생활을 숨기는 것도 꼭 좋은 것은 아닌데, 천성이죠.
- 이경규 선배의 딸은 아버지와 함께 방송에 나와 인기가 높은데, 혹 도현이(김용만의 아들)를 방송에 데뷔시킬 생각은 없는지…?
아내가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건 싫어해도 아이는 반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또 주위에서 아이가 귀엽다고 말을 해서, 내년에는 아이와 함께 방송에 출연할까 생각해요.
- 91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방송을 하던 중에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요?
남들은 미국으로 유랑을 떠났을 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때도 솔직히 힘들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가장 힘든 때는 를 맡기 직전이었어요. 겨울이었는데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마침 그때 국진이형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잖아요. 저도 그전까지 몇 개 프로그램의 MC를 맡으며 나름대로 잘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 둘 프로그램이 개편되더니 정말 아무 것도 안하는 백수가 된거에요. 주위에 부끄럽고 창피해서 밖에도 나가기 싫었어요. 세상이 살기 싫어지더라구요.
- 김국진씨를 비롯한 '감자꼴 4인방'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거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을 꼽는다면 ?
먼저 '칭찬합시다'를 만든 김영희 PD죠. 프로그램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재능을 발굴해 그것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타일이에요. 제 내면에 있던 장점을 발굴해 주었죠. 두 번째는 이경규 선배에요.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을 많이 해주죠. 이성미 선배도 고마워요. 진짜 별다른 이유없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거든요. 특히 사교성이 없는 저를 선배들과 많이 연결해 주었어요.
- 올해 알차게 활동했는데 내년에는 어떤 분야를 하고 싶으세요?
저는 이상하게 사전에 콘티를 짜는 프로그램에 약해요. 그냥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펼치는 것이 체질에 맞죠. 그래서 연기가 약해요. 시트콤이 앞으로 제가 개척할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연기는 제가 신인 개그맨보다도 약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2001년에는 시트콤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치고 싶습니다.
- 방송 활동 외에 다른 꿈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장난감을 무척 좋아해요. 미국에 있을 때 뉴욕의 대형 장난감 매장을 보고 언젠가 저런 것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아이들이 들어오면 넋이 나갈 정도로 멋진 장난감 가게를 차리고 싶어요.
김재범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