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을 맞은 올 한해도 어김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활약하던 수많은 ‘별’들이 사라졌거나 수뢰 등 오점으로 그 빛을 잃었다.
특히 올 한해는 독재자들의 마지막 길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서슬이 시퍼런 권력을 휘두르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59)이 시민혁명으로 물러나 국제전범으로 몰렸고 우격다짐으로 3선에 성공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대통령(62)도 망명 정객으로 전락했다.
두 사람은 10년 이상 장기집권한 독재자들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새삼 실감케 했다.
후지모리 전대통령은 10년전 일본계 페루이민 2세로서 대통령에 당선, 화제를 모았던 인물. 부패 문제 등으로 4월 대선에서 야당 후보 알레한드로 톨레도에 고전하다 부정선거로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 테이프 ‘뇌물, 비디오, 그리고 거짓말’이 공개되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도 지지를 잃고 몰락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11월 중순 해외로 출국해 슬그머니 일본으로 도피했다. 그곳에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소환요구가 거세다.
밀로셰비치 전대통령은 89년 과거 세르비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일약 영웅으로 떠올라 10여년간 유고연방을 철권 통치했다. 90년대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에 관여했으며 99년초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이던 코소보내 알바니아계를 대량학살한 ‘인종청소’를 배후 주도했다.
9월 대선에서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현 대통령과 맞붙어 선거결과를 조작했으나 10일만에 굴복했다. 국제전범재판소는 그를 인종청소 혐의로 기소한 상태.
지난해 물러난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98년 신병치료차 영국에 갔다가 체포됐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대통령은 올들어 법의 심판대에 올라 재임 중 범죄행위를 추궁받는 신세로 전락해 끊임없이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뇌물 및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수모를 받고 있는 지도자로는 배우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63)과 통일 독일의 영웅 헬무트 콜 전 총리(70)를 꼽을 수 있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상원에서 탄핵재판을 받고 있고 ‘비자금 스캔들’이란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뽑히게 한 콜 전 총리는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올해는 또 숨을 거둔 전현직 국가지도자도 적지 않았다. 우선 현역 지도자로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과로로 쓰러져 뇌사상태로 지내다 숨졌으며 중동평화협상 과정에 실세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타계했다.
전직 지도자로는 60년대 말부터 15년간 총리를 역임하며 캐나다 현대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계의 실력자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 총리, 베티노 크락시 전 이탈리아 총리가 유명을 달리했다.
또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의 부인으로 중동평화운동을 펼쳐온 레아 여사와 베트남 공산혁명 원로인 팜반동이 생을 마감했다.
이밖에 가톨릭 미국 뉴욕 교구를 이끌며 보수진영을 대표해온 존 오코너 추기경과 수십년간 코믹연재만화 ‘피너츠’를 그려온 만화가 찰스 슐츠, 올림픽에서 4개의 육상 금메달을 따낸 체코의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펙도 이승을 떠났다.
세계 최대의 입양기관 홀트 아동복지회를 운영하면서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고아들을 입양해 온 ‘고아들의 천사’ 버서 매리언 홀트 여사의 죽음은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윤양섭·홍성철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