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정국이 어수선하다.
한편에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부부동반 영수회담 일정이 발표되고, 이총재가 ‘경제난국 타개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선언함으로써 말 그대로 ‘상생(相生)의 정치’에 대한 기대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개헌론을 둘러싼 여야의 신경전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28일 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대행과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필요성을 제기하더니, 29일엔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도 가세해 이총재측을 자극했다.
이최고위원은 특히 “차기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1년 3개월만에 다시 국회의원 총선을 치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결딴난다”며 “과거 4년 중임제 개헌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총재가 이제 와서 ‘정략’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며, 정치지도자로서의 정도(正道)가 아니다”고 공박했다.
그는 또 “개헌론을 특정개인이나 정파의 이해가 걸린 ‘정략’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며 “정치인보다는 시민단체들이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견상으로는 이총재 진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원론’ 또는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개헌론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그런데도 개헌론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는 것은 현재의 정치구도에 대한 민주당이나 자민련, 그리고 한나라당내 비주류 세력의 ‘갑갑증’이 점점 비등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리고 개헌논의가 실제 개헌으로까지 연결되려면 대략 1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며, 그런 점을 감안하면 내년 초부터는 논의가 본격화돼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해석과 설명은 최근의 개헌론이 ‘국가적 어젠더(논의주제)’가 아니라 ‘정파적 어젠더’ 차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이 29일 다시 성명을 내고 “여권에서 느닷없이 개헌론을 제기하고, ‘DJP공조’를 복원시키려는 것은 정계개편을 위한 전주곡”이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다.
차기 대선주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는 무소속의 정몽준(鄭夢準)의원이 이날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특정 개인이나 정파가 어떤 권력구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한가 하는 관점에서 이런 논의를 제기한다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은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이 개헌론에 이어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와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JP―YS 회동을 주선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개헌론을 고리로 한 정치권의 ‘새판짜기’ 시도로 보고 있다. 김 전대통령까지 끌어들여 개헌론을 확산시키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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