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삶 꿈 사랑 재미있는 수필로
▽이도흠 지음/356쪽/ 1만원/푸른역사
최근 돌아가신 미당 선생은 ‘삼국유사’ 종교의 신자였다. 그 분의 ‘신라초’는 전적으로 ‘삼국유사’에 의존해 이미지를 구성한 시집이었다. 그 시집 안에서 사소는 세상의 욕망을 초월해 한 송이 꽃의 비밀을 탐색하는 구도자이고, 선덕여왕은 사랑을 나라의 법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치가이다.
사소는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꽃의 문을 열겠다고 선언하며, 선덕여왕은 첨성대 위에 가장 실한 사내를 세우라고 유언하고서도 홀아비 홀어미들이 염려스러워 욕계를 아주 떠나지 못한다.
이제는 벌써 20년도 더 전이지만, 신라에서 걸어나와 나날의 이웃들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1500년전, 2000년전 사람들에게 나는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도흠은 미당 이후의 유일한 ‘삼국유사’ 신자이다. 신앙의 강도로 본다면 어느 분이 앞설지 판단하기 어려우나 이도흠의 접근 방법은 미당보다 한결 신식이어서 이도흠의 책이 미당의 시집보다 이해하기 용이하다고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이도흠은 형식주의 분석체계와 문학사회학을 종합하는 나름의 분석 방법을 개발해 독자적인 시각에서 ‘삼국유사’를 해명했다.
‘유사’ 본문의 세부를 한 자 한 자 치밀하게 뜯어읽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그려낸 다음에 풍류 만다라의 세계관에 비추어 신라인의 글과 삶과 꿈을 재구성하는 것이 이도흠의 전략이다. 형식주의와 문학사회학을 종합하려는 그의 전략 자체가 불교와 샤마니즘을 종합한 풍류 만다라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 책을 지리책으로도, 문학책으로도, 철학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또 오랜 세월 경주의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한 결과로 나온 산물이기 때문에 이 책은 어느 관광 안내서보다도 친절하게 경주의 지리를 안내해준다. 이 책 한 권만 손에 들고 경주에 간다면 누구나 고대와 현대를 비교하면서 경주의 산과 들을 여유있게 산책할 수 있을 것이다.
향가 전문가가 일심으로 연구한 결과를 수필로 쉽게 풀었기 때문에 신라가요에 대해서도 새롭고 정확한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해준다. 처용이 중동의 의사였다든지, 조신이 반한 여자의 아버지 김흔이 반역자로 처단된 사람이었다든지 하는 사실들도 흥미롭다.
또 월명사가 하나를 없앤 두 해가 두 임금을 가리킨다든지, 경문왕이 함께 잔 뱀들이 귀족의 위해로부터 왕을 지켜준 화랑을 가리킨다든지 하는 해석도 재미있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아마 현대인보다 더 자유롭고 용맹한 신라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부분에 가장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도흠은 원효사상과 마르크스주의와 현대기호학을 연구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연스럽게 신라인의 집단무의식으로 작용했던 풍류 만다라를 체계화하고 현대사회의 심층에 있는 새로운 풍류 만다라를 찾아내 계급갈등과 민족분단의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고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민족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이 책이 현대인의 내면에 숨쉬고 있는 문화와 신화의 깊이를 체험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김인환(고려대 교수·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