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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전문가 의견]김위원장 답방여부가 최대분수령

입력 | 2000-12-31 17:34:00


새해에는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서울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평화체제 구축문제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밀레니엄 첫해 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밑그림이 드러난 한반도 냉전해체 작업의 성패도 여기서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국내 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새해 남북관계 전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김국방위원장의 답방이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었다. 새해 남북관계 이슈로는 △김정일국방위원장 답방(39.4%) △전력 등 대북지원문제(12.1%) △평화체제 구축(9.1%) △이산가족문제 해결(9.1%) △군사 및 안보위협 해소(6.1%) △속도조절론 등 여론(6.1%) △경의선과 개성공단의 순조로운 진행(6.1%) 등이 제시됐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유길재(柳吉在)교수는 “김국방위원장의 답방 자체로 한반도 화해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준비하는 정부의 과제도 만만치 않다. 통제된 북한사회와 달리 자유로운 남한사회에서는 각종 시위가 예상되는 등 경호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 정부 당국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팀이 한달 넘게 평양에서 사전답사하고 준비한 것처럼 북측도 준비에 많은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정상회담에서 다뤄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남북긴장완화 및 평화구축(54.5%)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KAL기 폭파 등 과거사 정리’(9.1%) ‘평화협정의 당사자문제 정리’(6.1%) ‘전력지원문제 논의’(3%) 등도 제시됐다.

그러나 남북 군사신뢰구축은 김국방위원장의 답방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평가됐으며,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관적인 대북정책이 필수적이라는 조언이 있었다.

새해 남북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대북전력지원 문제. 북한이 3, 4차 장관급회담에서 ‘전력지원이 없으면 남북관계 진전이 어렵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이산가족 문제 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전력은 단순한 구호물자가 아닌 전략물자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 다만 대북전력지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21.2%) △상호주의(21.2%) △일정량 지원은 불가피(18.2%) △개성공단 등 대북사업체 지원(15.1%) △경제전망을 고려한 지원(9.1%)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전체적으로 남북관계 변화를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종연구소 이종석(李鍾奭)연구위원은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 불과 6개월에 지나지 않는데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 전략적 ‘지원병’인 전력 등 대북지원에 인색해 대북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급속한 진전을 이룬 남북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평가에는 모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완전한 통일을 100%로 볼 때 현재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은 21.2%정도 진행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답변을 분석한 통계치다. 마찬가지로 현재 △남북교류 수준 22.6% △긴장완화 수준 26.8% △이산가족 문제해결 27.6% 등의 결과가 나왔다.

남북군사분야의 긴장완화에 북한이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남측도 북한을 여전히 ‘주적’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긴장완화 수준이 상당히 높게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 전문가는 “이는 지난 6개월간 남북관계 진전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것으로 체감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spear@donga.com

▼전력협력 어떻게 되나▼

새해 남북관계의 화두(話頭)는 전력이다. 전력이 남북경협은 물론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안정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력문제의 이런 상징성과 대표성은 지난해 제4차 장관급회담(12월12∼16일)에서 이미 확인됐다. 북측은 전력지원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송전(送電)방식으로 50만㎾를 당장 보내주지 않으면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남북관계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28일부터 2박3일간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경제협력 추진위원회’ 첫 회의에서도 주된 의제는 전력지원이었다.

그러나 남북이 대북 전력지원에 합의한다고 해도 당장 북한에 전력을 보내는데는 송배전 설비 등 기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

한 예로 송전을 위해서는 남북간에 가장 가까운 지점인 문산∼개성간(30㎞)에 송전탑을 세우고 전선을 깔아야 하는데 이 공사만 해도 1년이 넘게 걸린다. 여기에다 남북의 전력주파수가 달라 북한 전력설비의 상당 부분도 교체해야 한다.

발전소 건설도 50만㎾급 기준으로 건설비용이 6000억∼7000억원 드는 데다 공사기간이 최소 5년가량 걸리기 때문에 즉각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북측 희망을 현실적으로 들어주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결국 가능한 방법은 중유나 무연탄과 같은 화력발전 연료를 대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들이다.

통일부 관계자도 “북측이 당장 50만㎾를 지원해 달라는 얘기는 화력발전소를 돌릴 연료를 대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도 경제사정이 크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대북 지원의 일방성에 대한 논란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어서 전력지원은 재원도 재원이지만 결국 정치권을 포함한 국민 합의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대북 전력지원은 북한을 우리측에 매어놓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장기적으로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첫 걸음이라는 전략적 시대적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scooop@donga.com

▼의견조사 이렇게 했습니다▼

동아일보의 ‘새해 남북관계 전망’ 조사는 한반도 및 국제문제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델파이 기법(Delphi Technique)’을 적용한 조사방법에 따라 실시됐다. 미래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델파이 기법’은 예측이 어려운 미래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이를 계량화함으로써 예측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 동아일보 통일외교안보팀은 전문가들에게 포괄적 주제를 주고 복수의 구체적인 응답을 받아 이를 통계처리했다. 예를 들어 ‘김정일국방위원장 서울 방문 때 다뤄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라고 묻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여러 개 받아 그 비율을 따져보는 방식이다.

▼조사에 참여해 주신분▼

△강성윤(姜聲允)동국대 교수 △고유환(高有煥)〃 △김달술(金達述)전 남북회담사무국 자문위원 △김석향(金石香)통일교육원 교수 △남궁곤(南宮坤) 동아일보 부설 21세기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동용승(董龍昇)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유길재(柳吉在)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서동만(徐東晩)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서주석(徐柱錫)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 △윤영관(尹永寬)서울대 교수 △이병웅(李柄雄)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이서항(李瑞恒)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종석(李鍾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이항구(李恒九)통일연구회 회장 △전현준(全賢俊)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 차관 △제성호(諸成鎬)중앙대 교수 △조동호(曺東昊)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팀장 △조명철(趙明哲)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전 김일성종합대 교수) △허문영(許文寧)통일연구원 연구위원(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