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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전진우/고도는 못오시나

입력 | 2000-12-31 18:04:00


연극 ‘고도(Godot)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언제부터 고도를 기다렸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들에게 시간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의 한때’일 뿐이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고도가 분명히 오리란 확신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지루함과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쉴새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그런 기다림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그들에게 기다림이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까.

▷고도는 누구인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 작품으로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사뮈엘 베케트조차 “내가 그걸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그저 나름대로 생각하고 유추해야 한다. ‘신(神)이 아닐까?’, ‘자유가 아닐까?’, ‘희망이 아닐까?’라고. 관객들은 끝내 고도가 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러나 무대 위 어릿광대 같은 두 부랑자처럼 기다림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우리네 삶이란 결국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므로.

▷원로 소설가 최일남(崔一男)선생의 근간 소설집 ‘아주 느린 시간’에 실린 단편 ‘고도는 못 오신다네’의 두 노인은 공원 벤치에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어 ‘회장’이 된 옛친구를 기다린다. 그저 돈 많은 친구가 술 한잔 사기를 기대하면서 그들은 오후의 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부자가 된 옛친구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자신들이 ‘곁불이나 쬐는 신세’가 된 것을 안 두 노인은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고도가 ‘희망’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고도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저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불의한 탐욕, 허황한 명예 같은 것이라면 두 노인처럼 단호히 떨쳐버리는 것이 아름다운 자존(自尊)일 터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 현실이 어두워 빛이 보이지 않을지언정 희망마저 잃을 수는 없다. 비록 오랜 기다림이요, 설령 끝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 절망보다 나쁜 병은 없다. 희망만이 힘이 된다. 신사(辛巳)년 새 아침 새 희망을 위하여!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