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을 때마다 신년특집제작을 놓고 고심합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그 과정과 결론은 예년과 크게 달랐습니다. 권혁순국장대우 배인준부국장(편집기획담당) 이도성부국장(정치사회담당) 이인길부국장(경제에디터) 등 편집국 간부들과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댔습니다. 처음에는 모두의 표정이 무거웠습니다.
새로운 천년이라면서 떠들썩하게 시작한 지난해는 경제분야에서 시작된 위기론이 정치, 사회 분야와 맞물려 번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불안심리가 팽배했던 한해였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란 역사적 사건도 후속조치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함으로써 내부적으로 이념적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있습니다. 지역감정은 되레 악화되면서 사회적으로 심정적인 분열상은 더욱 치열해진 감이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사회는 위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불안과 노동시장의 불안은 우리의 국제 경쟁력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흐트러진 현 시국의 민심을 반영하듯 처음엔 새해의 화두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일선 부장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살리는 기본적인 방법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나갔습니다. 한달여의 심사숙고 끝에 새해 메시지의 골격이 잡혔습니다.
처음엔 ‘기초부터 다시’ ‘원칙을 다시 세우자’ ‘나부터 변하자’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새해 화두로 제기됐습니다. 각 분야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우자는 자성론이 기조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부터 변하자’는 제안에 많은 의견이 모였습니다. 앞으로 5년, 스스로의 근본적 변혁이 없다면 한국사회는 선진국 궤도에 올라설 수 없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신문사에서는 큰 기획을 시도할 때 외부 전문가그룹에 자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당성과 객관성에 대한 검증을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정반대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당신부터 변하라’였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이란 사회엘리트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 한국사회의 위기는 엘리트층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더욱이 일방적인 변화만을 강요받아온 일반 시민에게 또다시 변하라는 주문은 짜증만 나게 할 뿐 호소력이 없다는 의견을 첨부했습니다. 세태와 민심의 정곡을 찌르는 조언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모두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결정된 올해의 화두가 ‘변해야 한다’입니다. 사회지도층 변화에 대한 신년 특별여론조사를 실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변한다는 것은 모험이요 위험입니다. 그러나 발전이란 바로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의 축적입니다. 이번에 사회지도층에 앞서 언론의 변화를 요구하는 독자의 따가운 질책을 들었습니다. 언론은 과연 자신에게 엄격했는가. 좋은 것이 좋다고 안팎의 갈등을 두루뭉실하게 처리하지는 않았는가. 책임질 일에 당당했는가. 사회적 기대를 막연히 제시만 한 것이 아닌가. 언론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적을 쌓아 나간 적이 있는가. 한국 언론은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는가.
이제 저희들이 먼저 달라지겠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사회지도층의 변화를 끊임없이 촉구할 것입니다. 변화된 모습으로 ‘힘있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