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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최영해/국회가 달라져야

입력 | 2000-12-31 18:04:00


새해 국정 화두는 ‘경제 살리기’다. 이를 위해선 정치 선진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본다. 2000년 말로 되돌아가 보자. 경제 관료들은 11월 중순부터 새해 나라살림을 꾸려갈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해 경제정책의 틀을 짜는 것은 경제부처의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 무려 100조원의 예산을 쓰는 나라살림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살펴보자.

“9월부터 내내 국회에 매달리느라 내년도 경제방향을 놓고 제대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재정경제부 A국장)“올해는 임시국회까지 열리는 바람에 부처간에 민간 여론을 반영하는 회의조차 가진 적이 없다.”(기획예산처 B국장) “언제까지 국회 앞에서 기다려야 할지 짜증이 절로 난다. 여야끼리만 싸우는 게 아니라 공무원까지 현장에 잡아놓는다.”(재경부 C과장) 11월부터 과천 관가에는 책임있는 고위직 공무원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12월 10일 임시국회가 열리면서부터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경제팀장인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은 국회에서 살다시피했다. 물론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기능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운용과정을 보면 매우 비생산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재경부 장차관에서부터 실무 사무관까지 국회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 새해 경제정책의 마스터플랜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분한 논의를 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만든 계획이라는 것은 정책입안자들이 고백한 대로다.

지난해 12월 29일 정부과천청사. 그 마스터플랜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경쟁력 점검회의에서.

엘리트 경제관료로 25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어느 전직 공무원은 “이곳저곳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20여년 동안 전문서적을 1권도 읽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관료들이 졸속으로 만든 경제정책에 어떤 비전이 담길 수 있을까. 앞으로는 좀더 진지한 고뇌와 성찰(省察)이 담긴 경제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