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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록의 독서일기]"숨쉬는 항아리를 아십니까"

입력 | 2001-01-02 09:21:00


'옹기'가 무엇인지는 다들 아시나요? 흔히 '옹구'라고 하죠.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칭하는데, 질그릇은 질흙을 원료로 잿물을 입히지 않고 구워만든 그릇을 말하며 오지그릇은 붉은 질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다음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질그릇을 말합니다. 도자기는 사기그릇까지를 포함한 개념으로 도기(옹기)와 자기를 일컫지요. 사실 외국에서 고려청자다 이조백자다 하면서 '우리것'을 대단히 여긴 다음에야 '소중한 문화가치'를 알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관념미와 생활미 구별없이 실생활에서 사용해온 것이었으니까요. 문제는 자기의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만두고라도 옹기마저 온전하지 못하니까요. '마지막 전통의 옹기불씨'가 꺼지는 것은 볼 수 없다며 전북 진안 백운에서 틀어박혀 옹기를 굽는 옹고집이 있습니다.

이현배씨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1962년생이니까 이제 39살.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까닭은, 옹기를 고래로 내려온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흙과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흙담을 뜯어먹는등 유난히 흙이 끌렸다고 합니다. 경희호텔전문대학을 나와 유수한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요리사였는데도 결국 그의 길은 이번에 나온 수상집처럼 '흙으로 빚는 자유'(사계절 펴냄 247쪽 8500원)을 찾아 표표히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정말로 다행한 일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기꺼이 동행한 것이겠지요. 이제야 많은 이들이 옹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없는 희망을 갖습니다.

무슨 일이건 하나를 집중적으로 하면 세상이치에 도(道)를 통(通)하게 된다는 말이 있지요.

그는 따뜻한 가슴으로 진솔하게 흙그릇만을 연구했습니다. 그릇을 빚으면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일상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음을,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글은 그 사람의 얼굴입니다. 그가 언제 제대로 문장공부를 해봤겠습니까? 글쓰는 일이 어찌 그의 일이겠습니까? 멋쩍어하는 가운데도, 우리는 압니다. 이게 진짜 글이라고. 일하면서 살면서 느끼는 그대로, 말하듯이 풀어쓴 그의 수상록을 읽으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교훈을 얻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감동받듯이. 편편이 실린 작가 최광수님의 흑백사진이 더욱 분위기를 잡아줍니다.

4부 '다시 쓰는 옹기사전'을 꼭 봐주십시오. 30여개의 아름다운 옹기들이 전시됩니다. 도서출판 보림에서 나온 전통문화그림책 시리즈중 '숨쉬는 항아리'(정병락 글/박완숙 그림/6800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꼭 한권 선물해 주십시요.

마지막으로 청도 운문사의 장독대를 떠올리십시오. 영원한 침묵, 그 정갈한 분위기, 한국의 미가 총합된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 항아리들이 크나 적으나 모두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습니다. 고추장이 된장이 익고 있습니다. 진짜 항아리가 숨을 쉬냐고요? 글쎄요. 정확히 말하면 숨쉬는 게 아닙니다. 옹기그릇에 담긴 게 숨을 쉴뿐, 옹기는 그냥 가만히 있답니다. 다만 안에 담긴 게 숨을 쉴 때 옹기의 자격으로 물이 새는 걸 막으면서 공기를 소통케 할 뿐이랍니다. 소통, 그렇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이 될까요? 뭐이거나 막히면 썩습니다. 그냥 가만이 있는 데도 소통이 되는,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못생긴 질그릇 하나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 이러한 데도, 우리 정치나 사회 문화등의 소통 단절구조는 얼마나 한심합니까? 참으로 눈먼 중생들입니다.

어떤 철없는(?) 이들은 남의 성행위장면이나 엿보려 애씁니다. 어떤 이들은 좋은 책 한권에 인생이 바뀌어 참삶의 길을 걷습니다. 삶의 철학이 이이만큼이나 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해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최영록yr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