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년 12월 30일, 오후 6시 KBS 88올림픽 경기장에서 발산역까지 이어진 행렬. 거의 20대 여성팬들이었지만 간혹 넥타이부대가 눈에 띄었고 아이를 데려온 부부도 있었다. 대부분 우산도 없이 진눈깨비인지 비인지 모를 것들을 맞고 있었지만 오뎅 등을 파는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넷전쟁'을 들으며 환한 얼굴로 몸을 들썩거렸다.
택시를 합승한 20대의 여성팬은 "회사를 조퇴하고 대구에서 올라왔다"며 "그의 음악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며 감격에 젖어 있었다. 표를 끊는 곳에서 수호대가 "재밌게 보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자 누군가 "'재밌게 노세요'라고 해야죠"하며 즐거운 핀잔을 준다. 경기장 입구 앞 곳곳에 "절대 충성" "절대 태지"
"서태지는 서태지이기 때문에 영원히 존재한다" 등의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팬들은 4대통신, 다음카페 등 각종 팬클럽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노란색 수건, 손수건 등을 지니고 있었고 유난히 빨간 머리가 많았으며 서태지와 똑같은 빨간 레게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팬도 있었다.
#2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팬들은 흥분해 있었다. 곳곳에서 팬클럽 회장 등을 헹가래하기도 했고 스태프가 악기를 설치하는 것만 봐도 환호했다. '크로우' '디아블로'의 오프닝쇼에 수천명 팬의 팔은 똑같이 움직인다. 한 곳에서는 수십명이 일부러 몸을 부딪히며 헤드 뱅잉을 하다 다치기도 했다. 'YG 패밀리'와 함께 한 열광적인 힙합파티가 끝난 후 "절대지존 서태지!"를 외치는 함성이 거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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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후 8시반. 노란색 궁서체로 '태지의 화'라고 쓴 검정색 천이 무대를 감쌌다. 공연장은 곳곳에서 밝힌 라이터 불로 촛불 잔치 분위기. 무대는 무너지고 무대 양쪽의 멀티큐브에서 "1996년 대경성...(중략)…혼돈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자막과 함께 감옥문을 열고 나타난 서태지는 '대경성'을 열창했다. 이윽고 멀티큐브에 노숙자, 매춘, 성수대교 참사 등 혼란스러운 사회상이 담긴 영상물이 방영되는 동시에 '탱크'가 이어졌다. "No Change! Suck my Brain" 부분에서는 다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격렬한 헤드 뱅잉을 했고 노래는 쉼 없이 으로 옮겨졌다. 서태지가 'Come Back Home'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춤을 보여주자 마이크 소리보다 팬들의 함성 소리가 더 컸을 정도로 열광했다.
#4
한 소년, 울트라맨이 멀티큐브에 등장하자 팬들은 허공으로 손을 내밀며 광분한다. '울트라매니아'의 중간에 "더 이상 너의 영웅은 이제 없다.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바로 이날의 영웅은..."이라는 자막이 나오자 서태지는 귀여운 목소리로 "everybody!"를 외쳤다. 팬들의 손은 서태지를 향하고 서태지의 손은 팬들을 향했다.
노래 중간에 브레이크 댄서들의 현란한 춤이 끝난 뒤 서태지는 팬들과의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환상 속의 그대'가 끝난 후 잠시 스포트라이트가 드러머의 신기에 가까운 드럼연주로 집중됐고 그 후 암흑 속에서 라이터 불을 밝힌 팬들은 "사랑해"를 외쳤다.
김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