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잔칫날 은퇴 경기를 가질 겁니다.”
20대 젊은이도 힘겨워하는 미식축구경기에서 50대 ‘노신사’가 현역으로 뛰고있다. 이정호씨(54·한국 얼로드 전무이사).
1965년 서울대 수의학과에 들어가 미식축구를 접한뒤 36년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보기 드문 ‘젊은 오빠’다. 서울대 OB 출신들이 모여 만든 ‘스칼라스’에서 부동의 디펜시브 라인백으로 아직도 후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미식축구는 그가 대학에 들어가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11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상대를 제압해 나가는 것이 꼭 ‘사회조직’과 같았다. 자기희생이 따라야 하며 혼자 욕심내면 여지없이 부상을 당하고 만다. 상대를 잡아냈을때의 쾌감, 잡혔을때의 억울함,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다.
60년대 한국에선 미식축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기. 일부 대학에서 동호인들끼리 모여 ‘흉내’를 내고 있을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미식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한국 미식축구는 그나마 뼈대를 갖춰나갈 수 있었다.
서울 농대팀의 기반을 만든 그가 졸업후 84년 수정난 이식을 공부하기 위해 캐나다 연수를 다녀온 뒤 경북종축장 수정난이식 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그해 계명대 미식축구팀 창단을 도왔고 감독도 겸했다. 85년엔 미식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경북대 대학원에 등록한뒤 경북대팀을 키웠다. 또 80년대 말 서울농대 미식축구팀이 힘을 잃어가자 90년 팀을 서울 관악캠퍼스로 옮겨 전교생이 참여하는 클럽으로 키우는 등 미식축구의 활성화에 앞장섰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지만 아직도 내눈을 속이는 공격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95년 미국으로 이민가 오랜지카운티 어바인에서 살고 있는 그는 소고기를 판매하는 한국지사의 전무로 한국과 미국을 오간다. 한국에 있을땐 항상 사회인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힘이 남아 있을때까지 뛰겠다”고 말하는 그가 워낙 혈기왕성해 후배들은 ‘환갑때나 돼야 은퇴식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김치볼을 아시나요?’
한국에도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와 비슷한 미식축구리그가 있다. 대학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것으로 대학리그와 사회인리그로 나뉜다.
대학리그는 서울 12개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35개팀(1부 18개팀, 2부 17개팀)이 있고 사회인리그는 19개팀이 있다. 모두 회비와 선배들이 십시일반한 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는 ‘순수 동호인 리그’.
전국을 서울, 대구경북, 부산경남의 3개지구로 나누고 NFL 시즌 개막일에 맞춘 9월초에 시작, 1월달에 모든 일정을 마친다. 지역예선을 거쳐 8강(사회인리그는 4강)을 뽑고 토너먼트를 통해 리그 최강자를 가린뒤 ‘슈퍼볼’이 열릴때쯤 대학팀과 사회인팀이 맞붙는 대망의 ‘김치볼’로 한시즌을 마감한다.
이번 시즌에는 대학리그에서 서울대―경일대, 경산대―경성대가, 사회인리그에서는 스칼라스(서울대)―블루프랜즈(계명대), 레드스타스(경북대)―불루곤즈(경성대)가 1월6,7일 각 리그 4강대결을 벌인다. 각 리그 결승은 1월14일, 김치볼은 21일 열린다.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