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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日 나가노 시가고겐 스키장 '스키어 천국'

입력 | 2001-01-03 18:56:00


동계올림픽 경기가 한창이던 98년 2월 20일 오전 일본 나가노(長野)현. 남자 슬라롬(회전) 1회전 경기 시작을 앞둔 시가고겐(志賀高原)의 야케비타이야마 스키장에는 일본 천황 부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 해발 1600m의 이치노세 스키장 정상에서 바라다 본 '저팬 알프스' 산악군. 시가고겐 스키장은 해발 1400~1600m에 있는 일본 최대 규모 스키장으로 나가노 동계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알파인스키 최고의 스타인 노장 알베르토 톰바(당시 31세·이탈리아)의 멋진 경기도 볼 겸 일본이 자랑하는 기무라 기미노부 선수도 응원할 겸 온 것. 경기가 시작됐다. 예의 그 파워풀한 회전기술로 4연속 올림픽 메달레이스(88년 금, 92, 94년 은)에 도전하는 스키영웅 톰바의 날렵한 스키잉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1차전 결과는 17위. 경기 후 골반통증을 호소하던 톰바는 2회전을 포기하고 첫 출전한 한스 페터스 부라(당시 22세·노르웨이)의 금메달 레이스를 호텔방에서 TV로 지켜 보았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나이는 못속여. 부상치레 끝에 새끼양처럼 사라지다.”

톰바에게 나가노 올림픽이 ‘쫑 파티’였다면 헤르만 마이어(오스트리아)에게는 ‘헤르미네이터(Her―minator)’라는 그의 별명을 확고하게 각인시켜 준 ‘잭폿(Jackpot)’이었다고 할까. 지는 해와 뜨는 해라 할 정도로.

첫 경기인 다운힐(하쿠바의 하포네 스키장)에서 미끄러져 두 겹의 완충용 그물을 총알처럼 뚫고 60여m나 날아가 눈속에 처박히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회전 슈퍼대회전 두 종목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거는 역전드라마를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토니 자일러(1956년 올림픽 3관왕) 이후 다관왕을 배출하지 못했던 오스트리아는덕분에 ‘스키 교과서’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 날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랬다. “두개의 금과 한 번의 전복사고. 이제 마이어는 가장 빠르고 가장 친근한 선수가 됐다.” 뉴욕타임스 기사만 보아도 톰바는 가고 마이어는 떴다.

◇ 하포네 스키장

헤르만 마이어가 하마터면 스키인생을 마쳐야 했을 수도 있었던 하포네(팔방미근) 스키장의 다운힐 코스(평균경사 29.5%)위에 섰다. 쇼트턴에서 자연스럽게 스키가 바운싱될 만큼 가팔랐다. 나가노 올림픽 다운힐 레이스의 승자는 장뤽 크레티에(프랑스). 최고 속도는 31도 경사에서 기록한 시속 160㎞. 정상의 다운힐 출발대 안에는 크레티에의 기록이 명판에 새겨져 있다. 헤르만 마이어를 내동댕이친 다운힐 코스와 그가 눈밭에 볼링공처럼 튕겨져 나가는 장면은 헤르만 마이어의 홈페이지(www.hm1.com)에서 볼 수 있다.

스포츠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은 바로 이런 예측불허의 돌발성. 나가노현의 시가고겐은 바로 톰바의 시대를 마감하고 ‘헤르미네이터’의 시대를 연 역사적인 무대. 그래서 알파인 스키어라면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 역대 동계올림픽 스키장 가운데 우리와 가장 가깝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나가노현

‘일본의 마음(心)’이라 불리는 이 곳. 이유는 지도에 있다. 혼슈의 정 중앙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크지만 대부분은 ‘저팬 알프스’라 불리는 해발 3000m급 산악군으로 뒤덮였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고봉 준령이다. 6월중순까지도 하얀 눈으로 뒤덮인 저팬알프스는 알프스를 방불케 한다. 이 산악에 무려 109개나 되는 스키장이 있다. 그 유명한 노자와온센 묘코고겐 가루이자와 스키장이 모두 나가노현에 있다. 그 중 시가고겐은 21개 스키장이 산재한 최대 규모. 해발 2000m급 산에 둘러싸인 고원에 있으며 대부분 스키장의 베이스가 해발 1400m 위아래에 있다. 용평리조트의 최정상인 발왕산이 시가고겐 스키장에서는 베이스인 셈. 98년 올림픽때는 다운힐과 슈퍼자이언트슬라롬은 하쿠바, 슬라롬과 자이언트 슬라롬은 시가고겐에서 나누어 열렸다.

고원에 들어서면 산 곳곳에 슬로프가 걸린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원을 굽이굽이 관통하는 47㎞의 산악도로를 달려 오르면 오를수록 점입가경이다. 규모가 너무 엄청나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모든 스키장은 셔틀버스와 리프트 곤돌라로 모두 연결돼 IC칩이 내장된 리프트티켓 하나로 모두 가볼 수 있다지만 주요 슬로프만 섭렵하려 해도, 아무래도 사나흘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지난해 12월 7일 나가노현의 다른 스키장은 아직 개장준비 중이었지만 시가고겐만은 눈천지로 최상의 상태였다. 영하 7도에서 설질은 젖지도 뭉쳐지지도 않는 드라이 파우더. 눈결정이 태양열로 인한 대류현상으로 인해 먼지처럼 공중에 떠다니면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도 볼 수 있었다.

온천과 스키장이 설원의 고원과 어울려 낭만적인 풍치를 느끼게 하는 시가고겐. 그래서 유럽 스키어는 시가고겐을 일본의 생모리츠(스위스 알프스의 최고급 알파인 빌리지)라 부른다. 스웨덴의 스키영웅 잉게마르 슈텐마르크(1908년 동계올림픽 이후 스웨덴 최초의 알파인스키 금메달리스트·80년 2관왕)가 은퇴 후 이곳에 별장을 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찾아가기〓도야마 국제공항에서 3시간반 소요. 서울↔도야마는 아시아나항공이 주 4일(월 수 금 토요일) 왕복 운항중. 출발은 서울 오전 9시50분, 도야마 오후 12시반. 예약 1588―8000

▽패키지여행〓시가고겐과 하쿠바지역으로 떠나는 스키여행 상품은 전일본여행(ANT)이 국내 여행사에 공급하고 있다. 문의 02―777―1811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