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개된 민속학자 고 손진태선생의 유고 중에는 1930, 40년대 민요 가사를 채집해 놓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본다. ‘갈밧헤(갈밭에) 갈입히(갈잎이) 갈갈/대밧헤(대밭에) 대입히(대잎이) 대대/솔밧헤(솔밭에) 솔입히(솔잎이) 솔솔.’
악보를 같이 적어놓지 않아 가락을 알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가사만으로도 선인들의 재치와 정취가 느껴진다. 갈대와 대나무, 소나무의 이름이 나무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에서 비롯됐음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수십년 전만 해도 우리 생활에 살아 숨쉬던 민요나 동요들이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문화유산 가운데 없어진 것이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철학자 김용옥은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면면히 이어온 전통을 지난 50여년간 모두 땅속에 파묻어버리고 말았다고 개탄했지만 손진태선생의 유고를 접하면서 전통의 단절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얘기를 우리 음악 쪽으로 한정시킨다면 국악 전반에 걸쳐 이 같은 파괴는 심화되고 있다. 얼마 안남은 것마저도 빠르게 생명을 잃고 있는 것이다.
국악공연은 해마다 횟수가 줄고 있다. 또 대부분 ‘초대공연’이다.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면 그나마 관객이 오지 않으니까 무료로 연주회를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악공연에 가보면 빈자리 투성이다.
민요 농악과 같은 민속음악은 앞으로 십수년만 지나면 아예 없어질 것이라는 ‘멸종론’도 대두된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가운데 70, 80대 고령자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결코 ‘부풀려진 위기론’이 아니다.
과거 임금이 왕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음악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조선조 세종이 아악 정비와 향악 창제에 적극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이유는 음악과 사회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좋은 음악이 사회에 퍼지면 개인은 마음의 평정을 찾고 올바른 성정(性情)을 회복하며, 가정은 화목해지고, 나라에는 평화가 찾아온다고 선인들은 믿었다. 반대로 나쁜 음악이 횡행하면 사회는 피폐해진다는 것이었다.
중국 고전인 오경(五經) 가운데 예기(禮記)에는 오늘날 음악이론서에 해당되는 악기(樂記)편이 있다. 기원전에 쓰여져 유교문화권의 음악관을 잘 보여주는 이 책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음악과 사회, 음악과 풍속의 관계다.
새해 벽두에 한가한 얘기일지도 모를 국악 문제를 꺼낸 것은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자는 생각에서다. 세월은 달라졌지만 음악과 사회와의 상관관계는 오늘날에도 분명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체성 위기와 조급증이 혹시 외부에서 유입된 ‘나쁜 음악’에 영향받진 않았을까. 온통 욕심과 속물 근성으로 가득 찬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왕조시대처럼 국악을 중흥시킨다면 효과를 기대할 순 없을까.
백남준은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문화는 ‘소리’와 ‘춤’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소리’는 날로 움츠러들고 공교롭게도 정서는 메말라 간다. 또 위기는 반복되고…. 서양인들이 동양의 선(禪)과 사상에서 서구문명의 탈출구를 모색하듯, 우리도 국악과 같은 전통문화를 통해 ‘자신 찾기’에 나서는 것도 한가지 위기 해법이 되리라고 본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므로.’(악기·樂記 중에서)
홍찬식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