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불덮고…. 우리 진우 씩씩하네!”
서울 송파구 방이동 방이복지관에 마련된 장애인 전용 치과. 여기서 ‘이불’이란 진우의 몸을 묶기 위한 장치다. 자폐아 한진우군(13)이 충치 치료를 받기 위해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치료를 하는 의사는 복지관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서강치과 김미애(金美愛·41)원장. 그는 격주에 하루씩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장애인환자는 아무래도 통제가 힘들죠. 시간도 두배 이상 걸리고. 말을 잘 못알아 듣거나 말을 알아듣더라도 못 움직이거나….”
▼병원 비우고 진료나서▼
일반 병원에서 꺼려하고 병원을 찾기도 힘들다보니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병을 키워 119구급차에 실려 오는 장애인도 가끔 있다. 진우군의 어머니 박종미(朴宗美·39)씨는 “다른 치과보다 마음이 편하고 무료니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2001년은 유엔이 정한 자원봉사자의 해. 유엔은 대가없이 공동체를 위해 시간과 능력 등을 나눠주는 자원봉사가 환경파괴, 정신적 빈곤, 도덕적 타락, 부의 편중 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원장은 98년 병원 근처에 새로 건립되는 방이복지관에 장애인전용치과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건립 몇 개월 전부터 자원봉사 등록을 해둔 적극파. 지금은 치과의사 8명이 돌아가며 하루 평균 5∼7명 꼴로 장애인 환자를 돌본다.
▼재료비까지 직접 부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김원장의 얘기지만 의사라곤 달랑 혼자인 병원을 한나절이나 비우는 게 부담이 아닐 수는 없다. 그래도 그는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한술 더떠 복지관 예산이나 시설이 모자라 치료를 못하는 보철 환자 등은 자신의 병원에서 치료해주기도 한다. 치아 한개에 15만∼30만원하는 보철도 장애인은 무료다. “복지관 쪽에서는 실비라도 받으라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받겠어요.”
그가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처음에 얘기를 꺼리던 그는 살짝 가족사를 내비친다. “가까운 친척중에 뇌성마비 아이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애인에 대해 그냥 ‘안됐다’고만 생각했는데 곁에서 겪어보니 개인이 짊어질 수 없는 짐이란 걸 절감했죠.” 3대째 치과의사 집안. 어려운 사람이 찾아오면 치료비를 받지 않고 보내던 그의 선친도 주말이면 시골에 내려가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전용공간 마련했으면…▼
85년 경희대 치대를 졸업하고 결혼한 남편(김동욱·金東郁·광운대 교수)과 함께 떠난 미국 유학시절 남가주주립대(USC) 치대에서 장애인치과 과목을 수강한 경험도 크게 한몫했다.
그가 치료를 통해 장애인에게 선사하는 것은 치아건강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그가 치료해준 50대 시각장애인이 보내온 카드 내용. “선생님을 만나면서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장애는 숙명이 아니고 뛰어넘어야 할 과제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에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내후년 겨울쯤 병원을 확장할 때 96년 작고한 부친의 함자를 넣어 ‘김해수(金海洙) 장애인 치료방’을 한칸 마련하겠다는 꿈이다. 거기에는 아직도 보관 중인 1920∼30년대 할아버지가 쓰던 진료기기들도 갖다놓을 생각이다.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