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돈 총선자금 유입’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핵심 관련자인 김기섭(金己燮)전안기부 운영차장을 소환함으로써 ‘강공(强攻)’과 ‘속전속결’을 택했다.
검찰 관계자는 4일 “김씨가 사건의 전모를 세세하게 진술한다면 수사는 모두 끝난 것”이라며 김씨가 이번 사건의 ‘시작’임과 동시에 ‘끝’임을 확인했다.
▼"김기섭씨 입에 달렸다"▼
▽수사 전망〓검찰은 김씨가 96년 당시 신한국당 고위 간부를 통해 1000억원대의 총선자금을 전달한 장본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신한국당의 누가 이 돈을 받았는지와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개입됐는지 등 핵심 의문은 모두 김씨의 ‘입’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3일 이 사건이 3개월만에 언론에 다시 보도되자 대검 수뇌부가 모여 수사전략을 놓고 토론한 끝에 ‘김씨 소환’이라는 강공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정의 배경은 두 가지. 검찰은 치밀한 계좌추적 작업을 통해 이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상태여서 시간을 끌다가는 관련자 도피 등 부작용만 낳는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예산을 특정 정당의 총선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도덕적 정당성도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일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늦어도 5일에는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한 뒤 돈을 받은 신한국당 관계자들 쪽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우선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姜三載)한나라당 의원의 소환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와 강씨는 김전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 라인으로 불리고 있어 현철씨 역시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전대통령이 총선자금 제공을 지시했는지, 사전 사후에 보고를 받았는지 등에 대한 수사는 이번 사건의 맨 마지막 순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치자금’ 사법처리 여부〓과거 문민정부 비리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의 승인 없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관계자는 “아직 확실하게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조계 "예산횡령 해당"▼
김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98년 환란(換亂)사건 수사에서처럼 서면조사의 방식이 될 전망. 김전대통령의 개입이 확인될 경우 과거 공공연하던 ‘통치자금’사용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를 놓고 논란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들은 ‘통치자금’은 법률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 검사출신 변호사는 “통치자금이란 과거 대통령이 국정수행에 사용해온 돈을 일컫는 관행어이지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통치행위’와 같은 법률적 개념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돈은 법률적으로는 엄연히 국가예산이므로 이를 국가기관이 아닌 정당의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면 현행법상 예산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검찰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너무 민감한 문제”라며 언급을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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