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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게 이렇군요]베일속 '통치자금' 지금은 없나

입력 | 2001-01-04 19:04:00


역대 정권마다 구(舊)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안기부장이 직접 나서 기업으로부터 정치 헌금을 받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경찰이나 구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등 각 부처의 정보비나 기밀비로 편성돼 있는 예산을 이리 저리 끌어다 쓰는 식이었다는 것.

93년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 당시 민자당의 황명수(黃明秀)사무총장이 기업 헌금을 만들어내기 위해 김덕(金悳)안기부장에게 SOS를 타전한 일화는 전자(前者)의 생생한 예다.

당시 황총장은 김부장에게 “실탄이 부족한데 기업하는 사람들이 부장의 사인이 없다며 헌금에 난색을 표하고 있으니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기업인들에게 ‘OK 사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부장은 “황총장이 직접 대통령께 말씀드려라”며 발을 뺀 적이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 초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해 출국할 때 국정원 고위 관계자가 ‘관행’이라며 국정원 예산에서 여비 5만달러를 가지고 갔다가 야단을 맞았다는 얘기는 후자(後者), 즉 예산 전용의 예에 속한다.

김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원 예산이 이른바 ‘통치 자금’ 명목으로 대통령에게 한푼도 건네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 여권 관계자들도 이 점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또한 94년 국회 정보위가 신설된 후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 차원의 감시가 과거보다는 나아졌고, 특히 현정부 출범 후에는 정형근(鄭亨根) 김기춘(金淇春)의원 등 국정원 사정에 밝은 야당의원들이 정보위에 포진해 전과 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예산이 각 부처의 예산에 정보비 등의 명목으로 ‘은닉’돼 있고, 국회도 예산 총액만 심사할 뿐 세부 항목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심사를 할 수 없게 돼 있어 여전히 최고 통치자가 마음만 먹으면 국정원 돈을 언제든지 끌어다 쓸 수 있게 돼 있다. 전직 고위 정보 책임자들은 “법령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국정원 예산의 정치권 유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하고 “현재의 시스템 아래서 최고의 방지책은 대통령의 의지뿐”이라고 지적했다.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