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느 여야 영수회담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4일 회담처럼 총체적으로 격돌한 일은 없었다.
‘의원 꿔주기 정국’이나 구(舊) 안기부 자금 총선유입사건에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책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국정의 모든 현안에서 충돌했고, 파열음은 그만큼 심각했다. 마치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 열차의 충돌을 보는 듯했다.
이 시점에서 향후 정국을 점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게임’이 전개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硬)착륙 정국’의 신호탄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이 당장 서로를 ‘기피인물’로 규정하고 대화 중단과 파트너십 포기를 선언하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국정에 미치는 영향이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심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양은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두 사람은 쉽게 돌아오기 힘든 다리를 건넌 듯이 보인다. 대화 도중 김대통령의 입에서는 “야당이 나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여권은 그동안의 정국파행을 모두 이총재의 대권전략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엔 김대통령이 직접 이총재의 대권전략을 ‘난국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운 셈이다.
이총재도 마찬가지. 이총재는 이날 회담을 통해 김대통령이 ‘이회창체제’를 국정파트너가 아닌 ‘제거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했고, ‘의원 꿔주기’로 시작된 제2차 DJP공조는 바로 그 수단임을 알게 됐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두 사람의 이같은 상호 인식은자칫 ‘대권정국의 조기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서로가 상대방의 정치행위를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정도가 아니라 대권전략이나 정권 재창출전략의 산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대응한다면 그 귀결점이 어디일지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될 대목은 이총재의 이날 ‘DJ 다그치기’는 다분히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의식한 흔적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총재로서는 최근 DJP진영에서 거론되고 있는 ‘3김 연합론’을 내심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YS를 겨냥한 듯한 안기부 총선자금 수사가 다시 터져나오자 YS의 분노까지 얹어 DJP를 몰아붙임으로써 ‘3김 연합’의 가능성을 차단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어떻든 이날 회담은 올 한 해 정국이 대권경쟁의 조기 과열로 인해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로 읽혀진다.
chang@donga.com
영수회담 이후 주요 정치일정
1월 8, 9일
국회 본회의, 민생 및 개혁법안 처리예정
10일부터
한나라당 요구로 임시국회 재소집
12∼17일
한빛은행 불법대출의혹 국정조사 청문회
16∼20일
공적자금 운용실태 국정조사 청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