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4일 영수회담 대화내용은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과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이 각각 발표했다. 김대통령 발언은 주로 박수석 발표를, 이총재 발언은 권대변인 발표를 인용해 주제별로 정리했다.
▼의원 꿔주기▼
▽이총재〓(자민련에 입당한)세 의원을 다시 민주당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다. 정쟁(政爭)거리를 만들어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것은 야당의 협조가 필요 없다는 것 아니냐.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는데 ‘의원 꿔주기’식의 정치를 할 수가 있나. 대통령도 몰랐다고 하고 민주당 대표도 몰랐다고 하는데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 아닌가. 대통령은 자꾸만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하는데 여소야대는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 국민이 선택한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야지 여대야소로 바꾸려는 발상을 하고 있는가. 정말 비민주적이고 비의회적인 발상이 아닌가. 민주화투쟁을 했다고 하는 김대통령과 과거 독재정권들이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단순히 ‘의원 꿔주기’만 아니라 개헌이나 정계개편과 관련해서 커다란 정치음모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원 꿔주기’는 인위적 정계개편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배반감을 느낀다.
▽김대통령〓총선 민의는 여야에 과반수를 주지 않고 자민련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도록 한 것이 민의다. 자민련과의 공조는 대선 때부터의 공약이므로 당연한 것이다. 세 사람을 자민련에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길이 없었던 것 같다. 야당에서 국회법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물리력으로 막지 않았느냐. 그러면 무슨 방법이 있나. 한나라당이 국회법을 지키지 않고 힘으로 막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야당이 협력해주지 않아서 예산통과가 지연이 됐고, 야당이 협조해주지 않아서 자민련과 공조 회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총재〓총선 민의는 민주당이 아니라 야당에 1당을 준 것이다. 자민련은 17석밖에 주지 않았다. 국민이 DJP공조라는 것에 대해 불신임한 것이다.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준다면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야당이 협력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협력하지 않아서 통과 안된 게 무엇인가. 예산안을 말하는데 예산도 정책협의를 거쳐서 원만히 이뤄져야 하는데 민주당은 정책위의장이 사퇴하고 지도부도 교체해서 협의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한 짓인가. 야당이 협력을 안하기 때문에 DJP공조를 해 여대야소를 만든다는데 총선민의가 여소야대를 만들어줬으면 그 구도 속에서 야당과 협력해야 민주정치 아닌가. 대통령은 ‘의원 꿔주기’가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정도(正道)의 정치를 말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대통령이 가신을 보내서 교섭단체 만드는 것이 정도의 정치인가.
▽김대통령〓야당이 국회법을 처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야당이 내일이라도 국회법을 표결로 통과시킨다면 (자민련에 입당한) 세 명을 데려올 수도 있다.
▽이총재〓국회법은 합의해서 처리하게 돼 있다. 국회에서 처리할 문제다. DJP공조를 깬다고 선언하고 그 후에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 용의가 있는가.
▽김대통령〓그럴 수는 없다.
▽이총재〓자민련과의 공조가 지난 선거에서 깨지지 않았느냐.
▽김대통령〓우리는 한번도 공조를 파기하거나 파기를 얘기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도 총리와 내각에 자민련 장관들이 있다.
▼안기부 자금 수사▼
▽이총재〓어떻게 이 정권은 임기 내내 전(前)정권 파헤치기만 하는가.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소문만 흘려서 야당을 압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정권이 도덕성을 주장하려면 남을 탓하기 전에 이 정권, 그리고 대통령은 깨끗한가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정말 정쟁을 중단하고 경제를 살리자. 전 정권 파헤치기 같은 구태에 젖은 행동을 하지 말라.
▽김대통령〓국가 돈을 1000억원이나 썼다면 그냥 덮을 수는 없다. 안기부는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한 국가기관의 돈이 선거자금에 사용됐다면 그것은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일이다. 이런 문제로 시비를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총재〓안기부 자금관계는 진실을 밝혀라. 그동안 내내 뭐했느냐. 작년에도 비치다가 잠잠해졌는데 하필이면 왜 금년 영수회담을 앞두고 발표를 하는가. 이런 식으로 하니까 정상적인 사법권 행사로 보지 않고 야당탄압용으로 사용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김대통령〓그때는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고 조사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최근 분명히 신한국당에서 갖다 썼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검찰이 국가안전에 중대한 사건을 수사하는데 내가 검찰에 수사를 중단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과거 정부는 몰라도 검찰에 수사를 하라, 하지마라 하지는 않는다. 검찰이 독립성을 갖고 수사하는 것이다.
▼개헌, 정계개편▼
▽이총재〓총리를 포함한 개각이 필요하다.
▽김대통령〓참고로 하겠다.
▽이총재〓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
▽김대통령〓그 문제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 우리가 지난해 4월24일 영수회담에서 국정안정을 위해 여야가 건설적인 협력을 하고 신의를 바탕으로 정계개편은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했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해서 정국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실망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2년간은 야당과 협력하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싶다. 이총재와는 경쟁자도 아니다. 그러나 야당이 협력보다는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해보겠나. 적어도 경제문제나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협력해 나가자.
▽이총재〓최근 개헌론이 나오고 있는데….
▽김대통령〓내가 개헌에 대해서 얘기한 적도, 아는 바도 없다.
▼경제문제▼
▽이총재〓지금 나라와 경제 형편이 모두 아주 어렵다. 그런데 대통령은 ‘의원 꿔주기’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나 하고 있다. 영수회담 이틀 전에 안기부자금 유입설을 터뜨리는데 뭣하러 영수회담 하나. 이렇게 하는 것은 야당의 협조가 필요 없다는 것 아닌가. 금융개혁, 기업구조조정이 안됐다. 경제, 특히 실물경제가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지 대통령이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내년에 4% 성장한다고 하는데 마이너스 성장을 할지도 모른다. 정부통계를 봐도 수출 성장률 등이 모두 급강하하고 있다. 금융구조조정도 지난해 말까지 한다고 했으나 아무 것도 안됐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몇 가지 정책방향을 제안하겠다. 먼저, 정공법으로 가라. 원칙을 지키고 흔들리지 말라. 작년 영수회담에서도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완수한다고 했지만 되지 않았고 아무도 믿지 않고 있다. 국민이 믿지도 않는데 자꾸만 한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둘째, 경기부양은 해야 하지만 올바른 구조조정이 전제돼야 한다. 공적 자금 40조원이 마지막이 되려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 살릴 기업은 살리고 부실기업은 확실히 구조조정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책임지고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뒤에 숨고 관료들에게나 책임을 지운다면 어떤 관료들이 책임지고 일을 하겠나. 한빛은행 주식소각 조치와 관련해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고 하면서 관계자 문책을 지시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작년말 영수회담 때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전혀 책임지지 않고 관료만 나무란다면 국민이 냉소할 것이다.
넷째, 전면 개각을 단행하라. 우선 총리부터 바꿔라. 자민련과 나눠먹기식 개각으로는 국정쇄신이 불가능하다.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 프로를 등용해야 한다.
▽김대통령〓작년 말까지 (개혁의) 기본틀을 마련했고 계속 추진중이다. 2월말까지는 상당부분 마무리될 것이다. 나도 이총재의 생각과 같다. 현재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지금 급한 것들을 여러 가지 내가 책임지고 하고 있다. 이총재가 걱정하지 않아도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
jnghn@donga.com